[상장기업 CEO 열전⑩]김대영 슈피겐코리아 대표, '아메리칸 드림' 성공기…"포기는 빠를 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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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을 제대로 알고 싶으면 그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공한 기업은 CEO의 역량과 혁신의 자세, 영속기업을 만들기 위한 열정 등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물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주식시장에 입성하는 신규 상장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공모주 투자부터 상장 이후 주식투자에 이르기까지 투자자들은 알짜 기업 정보에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한경닷컴]은 주식시장에 갓 데뷔한 신규 상장기업부터 상장승인 심사를 마친 기업들의 CEO들을 집중 탐구하는 시리즈물로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편집자 주]
김대영 슈피겐코리아 대표(43).1998년 호주머니 속에서 전자수첩을 꺼내고,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한 남자를 사람들은 신기하게 쳐다봤다. 요즘이라면 그를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라고 부르겠지만 당시에는 그런 용어마저 낯설었다.
"10개 중 9개는 반품한다"는 김대영 슈피겐코리아 대표(사진·43)는 새 제품이라면 써보고 반품을 하더라도 먼저 구매해야 하는 얼리어답터다. 유행의 최전선에 있는 모바일 패션업계에서 새내기 상장사를 이끄는 최고경영자(CEO)이기도 하다.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로비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다소 상기된 표정의 김 대표의 손에는 얼마전 발매된 아이폰6가 들려있었다. 슈피겐코리아가 아이폰6 케이스로 미국 아마존 사이트를 점령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영업사원 출신 CEO의 '아메리칸 드림'…"한 마디로 멘붕"
소프트웨어 회사 영업사원이던 김 대표는 퇴근길에 문구점에서 투명 시트지 한 장을 사와 휴대폰 사이즈에 맞게 잘랐다. 김대영표 1호 휴대폰 액정 보호필름이었다. 얼리어답터 김 대표가 모바일 액세서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김 대표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자신있는 일을 찾아 2006년 휴대폰 보호필름 전문회사 SGP에 입사했다. 이후 그가 대표이사를 맡은 SGP코리아가 2012년 미국 현지 법인 유나이티드SGP를 인수하면서 현재의 슈피겐코리아에 해당하는 통합 법인이 탄생했다. 같은 해 김 대표는 미국 진출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국내보다 큰 미국 시장에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그는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 땅을 밟았다.
"한 마디로 멘붕이었죠. 회심의 일격으로 날린 주먹이 상대방 근처에도 못 간 기분이랄까요"
김 대표는 처음 미국 시장에 진출했을 당시를 '멘붕'이란 말로 표현했다. 야심차게 준비한 제품이 미국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자 심리적 타격이 컸다. 여성을 타겟으로 만든 슬림한 분홍색 휴대폰 케이스에는 차가운 시선만이 돌아왔다. 김 대표는 "잘 팔릴 것이라고 자신하며 만들었는데 하나도 안 팔렸다"며 "그 때 미국인들의 취향이나 생각이 우리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절치부심 만들어낸 네오하이브리드부터 슬림아머까지
김 대표는 자신을 '포기가 빠른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영업사원 시절부터 첫 미국 진출까지 수차례 실패를 경험하면서 깨달은 건 "포기는 빠를수록 좋다"였다.
그는 "생각한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면 '왜 안됐는지'를 파고들어야 한다"며 "실패 원인이 개선될 것이란 확신이 있다면 끝까지 밀어부치고, 그렇지 않다면 빨리 포기해야한다"고 말했다.
뼈아픈 실패를 경험한 후 미국을 떠나지 않았던 이유도 시장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패 원인은 미국 소비자의 취향을 읽지 못해서이지, 수요가 없어서가 아니였다는 것.
그 때부터 김 대표는 하루 종일 카페에 앉아 사람들이 쓰고 있는 휴대폰을 관찰했다. 휴대폰 케이스의 색깔 모양 제질 등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했다.
김 대표는 "며칠동안 사람들을 관찰한 끝에 미국에서 메탈(금속) 소재 케이스의 선호도가 높다는 사실을 알아챘다"며 "단가가 비싼 메탈 대신 플라스틱에 메탈 느낌을 줘 가격경쟁력을 높인 제품이 범퍼형 분리케이스 '네오하이브리드'"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실용성 높은 제품이 먹힌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당시 미국에서 판매 1위를 다투고 있던 제품들은 전부 보호 기능에 충실한 제품들이었다.
김 대표는 "정말 1위 제품이 맞나 의심이 될 정도로 투박하고 멋이 없었다"며 "그 당시 한국에서라면 결코 잘 팔리지 않았을 제품"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경쟁사 제품을 뜯어보며 절치부심의 노력 끝에 만들어낸 제품이 슈피겐코리아의 또 다른 흥행 제품 '슬림아머' 시리즈다. 네오하이브리드 시리즈와 함께 회사의 안정적인 매출 성장세를 이끌고 있는 효자 상품이다.
아이폰6용 네오하이브리드 EX. / 사진제공=슈피겐코리아 ◆"슈피겐코리아, 불안정성 유지하는 회사로 만들것"
미국 소비자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노하우가 생기면서 신제품의 생존율도 높아졌다. 2012년 출시한 전제품이 출시 후 단종됐지만 2013년에는 30%, 올해는 70%의 제품이 살아남았다. 그는 자신이 '맨땅에 헤딩'하며 하나씩 세상에 빛을 보인 제품들을 자식처럼 표현했다.
미국 출장을 앞두고 있던 김 대표는 "기획력은 사무실에 앉아서 궁리한다고 해서 나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모바일 패션업계 유행을 꿰뚫는 김 대표의 기획력도 사람을 만나고 관찰하는 과정에서 길러졌다. 요즘도 그는 현장에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 경쟁사 제품을 살피느라 좀처럼 사무실에서 찾아보기가 힘들다.
김 대표는 이제 갓 주식사장에 첫 발을 뗀 슈피겐코리아를 '불안정성을 유지하는 회사'로 만들겠다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포부를 밝혔다.
"물이 잔잔하지 않고 끓는다는 것은 새로운 에너지가 주입됐다는 증거입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걸 시도하며 불안정할 때 그 회사는 죽지 않은 회사, 건강한 회사일 것입니다."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슈피겐코리아는 세계 모바일패션 시장에서 3위를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최근 3년간 연평균 매출성장률은 40%에 달한다. 올 3분기까지 별도기준 누적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574억원과 207억원이다. 하반기에는 아이폰6 출시 수혜까지 예상돼 올해 사상 최대 실적 달성을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