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은 동양문화 상징…예술로 부활시켰죠"

'숯의 화가' 이배 개인전
‘숯의 화가’ 이배 씨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본관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앞에 서 있다.
“숯은 죽은 물질이라고 얘기하지만 제게 숯은 생명력을 머금고 있는 에너지입니다. 불에서 왔지만 불을 머금고 있죠. 죽은 형태를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체성을 통해 에너지로 바뀌는 겁니다.”

서양화가 이배 씨(58)는 지난 25년간 숯을 그려왔다. 2000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던 그는 내년 9월 프랑스 파리 기메미술관에서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 만큼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작가다.홍익대 미대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89년 프랑스로 건너간 이씨는 물감 살 돈이 부족해 1500~2000원 정도 하는 숯 한 봉지를 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숯을 재료로 드로잉, 캔버스, 설치 등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해오며 영역을 확장했다.

내달 14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본관에서 숯을 재료로 한 회화 20점과 설치작품 7점을 선보이는 그의 개인전이 열린다. 서양 문화권에서 숯은 동양 문화에 대한 상징으로 통한다.

“동서양을 나눠서 보면 동양은 ‘먹’의 문화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제가 작품에 사용하는 검정 그을음은 숯에서 나오는데, 숯은 먹이 갖고 있는 동양 문화권에 대한 것을 얘기합니다. 예전 작업에서는 숯, 그 재료 자체를 보여줬다면 최근에는 숯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화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시골에서 보낸 유년의 경험은 그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 “몇 년 전 고향인 경북 청도를 방문했을 때 어머니가 냉이 된장찌개를 끓여 주셨어요. 참 맛있게 먹었는데 제가 어릴 때부터 먹고 자라서 그렇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더군요. 머리에 기억한 정보, 지식, 경험은 잊어버리지만 몸으로 경험한 것들은 기억하고 느낍니다. 작품에 선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제가 그런 것을 그릴 수밖에 없도록 하는 신체의 기억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02)2287-3591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