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해고 쉽게 法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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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비정규직 대책 동시에…노사정 대타협 이끈다정부가 정규직의 고용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임금피크제 활성화에 나선다. 또 정규직을 고용한 뒤 일정 기간 안에 해고할 수 있는 선택권을 사용자에게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정리해고법 도입 16년만에 '고용유연성' 대수술
채용후 일정기간 사용자에 '해고 선택권' 부여
정부 고위 관계자는 24일 “비정규직 보호대책만 내놓으면 고용 경직성이 너무 커져 비정규직의 노동시장 진입이 더 어려워진다”며 “다음달 비정규직 대책과 함께 정규직의 고용 유연성 강화 대책을 동시에 내놓고 노·사·정 대타협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정규직의 고용 유연성에 손대는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정리해고법이 도입된 이후 16년 만이다.이를 위해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정부는 우선 민감한 영역인 정규직의 고용 유연성 부문에선 해고 요건보다는 절차를 개선할 방침이다. 정리해고 요건은 사회적 효용보다 비용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복잡한 정규직 해고 절차를 합리적인 방향으로 간소화하겠다는 방안이다. 3개월로 규정된 수습·인턴제도와 별개로 사용자에게 고용 후 일정 기간 정규직을 해고할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독일의 경우 사용자는 6개월 동안 정규직을 해고할 수 있어 검증된 인력을 채용할 수 있다.
기재부와 고용부는 정규직의 근로시간과 임금 유연성을 높이는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 실효성이 없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적용 기간을 두 배로 늘려 사업장의 고용 효율성을 높이기로 했다.
노사가 사업장 실정에 맞게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현행 근로기준법에선 2주(취업규칙) 또는 3개월(노사 서면 합의) 단위로 시행할 수 있다. 하지만 적용 기간이 짧아 이 제도를 활용하는 기업은 전체의 6~7%에 불과하다.정부는 이에 따라 탄력적 근로시간제 기간을 각각 1개월 또는 6개월 단위로 늘려 활용도를 높이기로 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의원입법 형태로 세 건 이상 상정돼 있다. 정부 안은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 안에 가깝다.
임금피크제 활성화를 위해 근로기준법 제94조의 취업규칙 불이익 조항도 개선한다.
정규직 임금피크제 도입 간소화…비정규직 계약기간·사회보험 확대정부는 임금피크제가 활성화되지 못한 원인이 현행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의 과반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조항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임금피크제는 임금을 깎는 대신 정년을 늘려주기 때문에 근로자에게 이로운 측면이 있지만 취업규칙 불이익 조항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것.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년을 앞둔 근로자의 일정 동의를 구하는 방식 등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기재부 관계자는 “정작 임금피크제를 원하는 직원들이 취업규칙 불이익 조항 탓에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의 경우 기간제법을 개정해 초단기 계약 관행을 없애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현재 2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2~3개월로 쪼개 근로계약을 맺어도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기간제 근로자의 안정적인 근무 여건을 위해 아예 악용될 소지를 차단하기로 했다.
정부는 기간제 계약 기간 2년도 3년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다. 고용부는 3년으로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보는 반면 기재부는 5년 안팎으로 대폭 늘리는 게 낫다는 입장이어서 아직 최종안은 결정되지 않았다.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가입률을 높이기 위해 정부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도 대책에 담긴다.
정부는 산업구조가 급변하고 있는 데다 경제도 저성장하고 있어 노동시장 구조 개혁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부문을 아우르는 노동시장 개혁을 내년에 본격적으로 추진할 예정인 경제 구조 개혁의 시발점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7월 취임 직후 대화가 끊겼던 노사정위원회를 복원해 첫 단추를 끼워놓았다.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리해고 제도가 도입된 이후 정치적 이유로 인해 정규직의 고용 유연성 대책은 거의 없었다”며 “정부가 이제라도 선진국과 같이 저비용·고효율로 성과를 낼 수 있는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를 시작으로 노사 대타협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세종=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