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한화 '2조 빅딜'] "지금 안바꾸면 죽는다"…10대그룹 중 7곳 '사업재편' 잰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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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사업 강화…기업 선제·자율적 재편삼성-한화의 ‘빅딜’은 올 들어 본격화하고 있는 재계의 자발적 사업재편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잠깐 체력을 회복했던 주요 대기업들은 올해 주력산업 업황 부진으로 다시 사업재편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10대 그룹 중 LG, 롯데, GS를 제외한 7개 그룹이 계열사 매각, 합병, 인력 구조조정에 한창이다. 재편 내용도 일개 계열사·사업부 구조조정이 아닌 기존 사업의 근간을 다시 짜는 ‘큰 판’으로 커지는 추세다. “1999년 정부 주도 ‘빅딜’ 이후 최대 산업재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이란 분석도 나온다.
1999년 정부 주도 '빅딜' 이후 최대 규모
◆‘비주력사업 털어내자’가장 공격적인 사업재편을 하는 곳은 삼성이다. 삼성은 한화그룹에 방위산업, 석유화학 부문 4개 계열사를 매각하기 이전부터 과감한 구조조정을 벌여왔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실적부진과 맞물려 작년부터 장기 업황부진을 겪는 계열사와 사업부를 합치는 작업을 추진했다. 올 들어서만도 삼성SDS와 삼성SNS, 삼성SDI와 제일모직,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을 합쳤다. 결과적으로 불발은 됐지만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합병도 추진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마찬가지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8월 7개 계열사를 단 하루 만에 3개로 합쳤다. 현대위아를 통해 현대위스코, 현대메티아를 흡수합병해 자산 5조원이 넘는 파워트레인(엔진+변속기) 제조 계열사로 키웠다. 또 현대오토에버는 현대씨엔아이, 현대건설은 현대건설 인재개발원을 각각 합병했다. 지난 4월엔 현대엠코와 현대엔지니어링을 합쳤으며, 작년엔 현대제철이 현대하이스코 자동차강판 사업을 흡수했다. 모두 계열사 간 중복 투자에 따른 비효율성을 제거하고,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한 조치다.SK그룹은 SK이노베이션을 통해 2011년 인수한 미국 태양전지 제조업체 헬리오볼트를 올해 초 매각했다. 포스코도 올해 3월 권오준 회장 취임 직후 강도 높은 사업재편에 착수했다. 재편 방향은 비핵심 사업 분야를 대거 매각하는 게 골자다. 이를 위해 광양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 일부 지분과 제철 부산물 처리업체 포스화인, 남미지역 조림사업 업체 포스코-우루과이 등 3개 자회사를 매각할 계획이다. 또 스테인리스 특수강 생산 전문업체인 포스코특수강을 세아그룹에 넘기는 매각협상도 벌이고 있다. KT도 최근 렌터카 운영업체 kt렌탈을 매물로 내놨으며 동부그룹도 동부발전당진, 동부특수강, 동부하이텍 매각을 추진 중이다.◆생존 위한 몸부림
주요 그룹의 사업재편은 그만큼 국내 기업들이 처한 상황이 힘들기 때문이다. 내수경기 침체와 중국 기업의 도전 등으로 전자·철강·석유화학·조선 등 주력 업종 간판기업들의 실적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1~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9조원가량 급감했다. SK그룹 주력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의 3분기 누적 영업이익도 지난해 1조4000억원에서 올해 2300억원으로 80% 넘게 줄었다. 작년까지 조 단위 이익을 냈던 현대중공업은 올 들어 3분기까지 3조원이 넘는 영업적자를 내고 있다.배 부원장은 “과거 빅딜이 정부가 주도한 반강제적인 방식이었다면 지금 구조재편은 각 그룹이 ‘생존’을 위해 자율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며 “졸면 망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강조했다. 수년째 기존 사업에 의존했던 경영환경이 불과 1~2년 새 급변하고 있는 만큼 ‘지금 바꾸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절박함이 구조재편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재계 관계자는 “동부 현대중공업 등 경영난을 겪는 그룹들은 실적 회복 차원에서, 다른 그룹들은 비주력 사업을 선제적으로 떼어내자는 차원에서 구조재편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내년에도 한계사업을 정리하는 바람이 거셀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태명/남윤선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