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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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주하는 사회, 비극적인 이면올해의 주목할 만한 단어는 ‘의리’다. 1990년대 배우가 지난 20년간 한결같이 외쳤다던 의리가 올해 드디어 떴다. 언제부터인가 점잖은 자리에서 듣기 어려웠던 단어, 촌스럽게까지 느껴졌던 그 말이 이처럼 각광을 받게 된 까닭은 우리 모두 그것이 간절히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의리, 신의, 책임은 혼란스러운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빨리' 아닌 '바른' 책임감 절실
이재후 < 김앤장 대표변호사 jhlee@kimchang.com >
그중 ‘책임’을 뜻하는 영어 단어 ‘responsibility’의 어원은 응답하는 능력, 즉 ‘응답하다(respond)’와 ‘능력(ability)’을 더한 것이라고 한다. 참 좋은 해석이다. 그 응답은 때로 정답이 아니라도 충분할 것이다. ‘당신의 부름이 외마디가 되지 않게 하겠다. 그 부름에 답하고, 당신 곁에서 손을 잡겠다. 그래서 힘이 되겠다’는 뜻이리라.기왕에 어원 얘기가 나왔으니, ‘변호사(辯護士)’의 한자 의미는 ‘타인을 위해 말해 주는 사람’이다. 경제가 앞만 보고 전진하던 시절, 변호사들 또한 뒤돌아볼 새 없이 달려간 것이 사실이다. 물어보는 것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빠르게 응답해야 했다. 멀리 볼 겨를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법조계뿐이랴. 우리 사회 모든 분야, 모든 직업군이 정신없이 묻고 답하며 질주했다.
그런데 그렇게 쉼 없이 달린 것이 죄였을까. 2014년 그로 인한 누수와 비극적인 결과들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너무나 혹독한 모습으로. 누구의 탓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참혹했다. 더욱 두려운 것은 혹시나 이것이 더 큰 불행의 전초이지 않을까 하는 염려다.
문득 공자의 정명론을 떠올려 본다. 자로라는 제자가 ‘정치를 한다면 공자께서는 무슨 일부터 하시겠습니까’라고 질문하자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고 답했다는 일화에서 비롯된 가르침이다. 이름이란 그것이 뜻하는 바를 바로 알게 하되, 그에 그치지 않고 그 이름에 합당한 행동을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다.지난 60년간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이름에 따라 재빠르게 응답해 왔다. 이제는 달리 볼 때다. ‘책임’이라는 것이 신속한 답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님을 큰 상실을 겪으면서 체득하게 됐다. 당신의 부름에 충실히, 바르게 응답하겠다는 마음가짐. 질주하는 당신의 뒤에 뒤처진 다른 누군가의 부름에도 귀 기울이겠다는 다짐으로, 당장은 큰 빛이 나지 않을지라도 내 이름에 걸맞게 소임을 다하겠다는 약속. 그런 마음들이 모여 따뜻하게 응답해 가는 세상, 그것이 우리가 후대를 위해 해야 하는 진정한 책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재후 < 김앤장 대표변호사 jhlee@kimch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