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이직의 달인'이 일 더 잘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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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쇼크창조적 인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기업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깊이 뿌리 내렸다. 기업들은 인재가 떠나지 못하게 붙잡아 두려고 애쓴다. 최고 인재를 가로채려는 다른 기업들과 싸우기도 하고 떠나는 인재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기도 한다.
오를리 로벨 지음 / 김병순 옮김 / 싱긋 / 496쪽 / 1만8800원
정통 주류경제학에서 인적자본과 지식재산권 통제는 기업 입장에서 불가피한 제한이다. 그런 보호 조치가 없으면 고용주는 인재 육성에 투자하지 않는다. 인재들은 스스로 자기를 계발하고 기술을 개발할 재원이 없어서 회사로부터 그런 지원을 받는 대가로 자신의 자유를 맞교환한다는 것이 전통적 견해다. 퇴직 후 경쟁사 이직 금지(경업금지), 비밀유지 협약, 특허와 저작권 양도 등을 통해 인력 이동을 제한하고 정보를 통제하는 것이 결국 인적자본에 대한 회사의 효율적 투자를 가능하게 하고 촉진한다는 논리다.오를리 로벨 미국 샌디에이고대 법대 교수는 《인재 쇼크》에서 ‘통제하는 기업일수록 연구개발과 인적자본에 더 많이 투자한다’는 전통 모델을 반박한다. 그는 제도적 장치를 통한 인적자본에 대한 지나친 통제는 기업 혁신과 관련 산업 및 지역의 발전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한다. 통제는 혁신적인 인재의 동기 유발을 약화시켜 기업 내부의 혁신 동력을 잃게 만들고, 인재의 자유로운 이동과 교류가 빚어내는 혁신을 저해할 뿐 아니라 산업 전체로 지식과 아이디어가 확산되는 것을 막는다는 설명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케네스 애로는 “중앙통제가 아닌 경쟁이 혁신을 자극한다”며 “기업 간 인력 이동은 정보를 확산시키는 계기를 마련한다”고 했다. 저자는 “오늘날 시장 상황과 새로운 학문적 연구 결과는 애로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입증한다”며 “혁신적 인재들은 서로 협력해서 일할 때 개별적으로 유리된 채 일하는 그들을 합한 것보다 훨씬 더 큰 능력을 발휘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각종 최신 연구와 미국 기업들의 구체적인 사례를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개한다. 첨단산업 분야에서 성공한 기업들은 인력 이동으로 경쟁사들과 공유하는 정보가 많아질수록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더 늘린다. 페이스북과 구글, 펩시콜라와 코카콜라, 사우스웨스트 항공과 제트블루 항공 등에선 최고의 인재들이 경쟁사를 옮겨다니며 아이디어와 열정을 교환할 때 서로 경쟁적으로 투자도 늘어나고, 혁신도 촉진되고, 순익도 증가했다. 직장을 잘 옮겨 다니는 인재가 생산성이 더 높다. 직업 세계가 확장되고 혁신 역량이 성장하기 때문이다. 이직을 자주 하는 직장인이 그렇지 않은 직장인보다 생산성이 네 배 더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저자는 인재 이동을 막기 위한 기업들의 비생산적인 싸움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일부 첨단기술 산업 부문에서는 창업 비용에 소송 비용을 포함시키는 것이 관행처럼 돼 버렸다. 대기업들은 뻔히 질 것을 알면서도 막대한 비용이 드는 소송을 걸어 벤처기업으로 인재가 이동하는 것을 막는다. 저자는 “이직 제한은 새로운 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고, 유능한 인재가 자기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게 해 결국 지식의 자유로운 흐름과 인재 육성을 억누른다”며 “혁신의 필수 조건인 인재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