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입을 열어라, 귀를 열어라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이 최근 공개석상에서 한 말이 화제가 되고 있다. 김 의장은 지난 24일 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스타트업 네이션스 서밋’ 기조연설을 했다. 이 자리에서 “기업이 지속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며 “소셜 임팩트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김 의장은 ‘소셜 임팩트 기업’을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한 분야 또는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기업”이라고 정의했다. 김 의장 얘기를 달리 표현하면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사회를 바꾸는 일은 기업이 주도할 테니 정부와 정치권은 뒷받침을 잘해 달라는 얘기다.기업인 입 닫고 공무원 귀 닫고

김 의장 발언이 알려지자 IT 업계 사람들은 소셜 공간에서 큰 호응을 보였다. 이들은 정부 주도로 ‘한국형 운영체제(OS)’를 개발한다느니, ‘한국형 유튜브’를 만들겠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좌절하곤 했다. ‘도와 달란 말은 안할 테니 제발 가만히 있어 줘.’ 이것이 이들의 심정이었다.

그동안 국내 IT 업계에서는 성공한 창업 1세대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보니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의장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김정주 넥슨 회장이 놀랄 만한 얘기를 했다는 소식도 들은 적이 없다.IT 업계 사람들이 입을 다문 지는 오래됐다. 기자가 정보통신부를 출입했던 10여년 전에도, 방송통신위원회를 출입했던 3~4년 전에도 그랬다. “사무관만 나타나도 입을 다문다”고 했다. “괘씸죄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의장의 최근 발언은 정부를 향해 ‘기업이 혁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달라’는 완곡한 표현이다.

기업인들이 입을 다문 탓인지 정부는 업계 바람과는 다른 엉뚱한 정책을 내놓곤 했다. 인터넷 실명제로 동영상 서비스 이용자들이 미국 유튜브로 ‘망명’할 때도 해당 기업 실무자들만 울분을 토했지 기업인들은 입을 다물었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으로 전국이 발칵 뒤집혀도, ‘한국형 유튜브’ 얘기가 나오는 지금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업계와 괴리된 정책 속출최근 중국에서는 알리바바 창업자인 마윈(馬雲) 회장의 발언이 화제가 됐다. ‘마윈 어록’이란 이름이 붙어 널리 퍼졌다. 마 회장은 “13~14년 전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30곳을 찾아갔는데 알리바바가 성공할 거라고 말한 이는 하나도 없었다”는 말도 했다.

미국에서는 테슬라와 스페이스X 창업자인 엘론 머스크의 인공지능(AI) 발언, 화성 관련 발언이 화제가 되곤 한다. 머스크는 “로봇이 인간을 제거하려 들 것이다” “AI가 원자폭탄보다 위험하다”는 말도 했고, “10년 내에 화성에 사람을 보내겠다” “화성에서 죽고 싶다” “화성에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말도 했다.

지금 국내 IT 기업인 중에 미래를 얘기하는 이는 거의 없다. 소셜 공간에서 자주 듣는 말은 정부에 대한 바람이다. 제발 도와준다는 핑계로 규제를 만들지 말라는 얘기, 한국을 ‘갈라파고스’로 만드는 규제를 제거해 달라는 얘기, 기술을 제한하는 규제는 도입하지 말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삼성전자가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샤오미에 덜미가 잡히고 수익이 악화되면서 IT 업계에 긴장감이 역력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업인들이 입을 열고, 관리와 정치인들이 귀를 여는 것이다. ‘갑(甲)’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 얘기를 듣고 정책에 반영하려는 노력이 시급하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