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의 미스터리 속으로 <上> 페루 神의 취미였을까, 외계인이 낸 퀴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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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사이와만의 360t 넘는 돌은 어떻게 가져다 놨을까
나스카 미스터리…우주인은 누구에게 손을 흔들고 있을까

페루, 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여행지

고백하자면 오래 전부터 바라고 바란 여행이었다. 누군가 ‘딱 한 곳만 가보고 싶은 나라’를 물으면 주저하지 않고 ‘페루’라고 대답했다. 최근 인기를 끈 TV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페루 편’ 때문이 아니다. 1987년에 ‘태양소년 에스테반’이라는 애니메이션이 방영됐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살던 주인공 에스테반이 잉카의 황금 도시를 찾는 이야기였다. 안데스 산맥 위를 날아오르는 황금 콘도르, 잉카 소녀 시아, 온통 금으로 뒤덮인 엘도라도…. 그때부터 페루는 ‘꿈의 여행지’로 가슴 속에 남았다.
리마(Lima) 공항을 빠져 나오자마자 커다란 광고판이 눈에 들어왔다. 한 쌍의 남녀가 마추픽추 앞에서 페루를 대표하는 맥주 쿠스케냐(Cusquena)를 마시는 광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토록 기다려온 페루 여행이 시작됐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거대한 그림, 외계인이 낸 퀴즈?
나스카로 향하는 아침,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남쪽으로 약 240㎞ 떨어진 피스코(Pisco) 공항. 여기에서 40분 정도 날아가면 나스카 상공에 닿는다. 12인승 경비행기에 오르자 예상보다 더 긴장됐다. 짝사랑했던 상대를 만나러 가는 기분이랄까. 한참 후 기장이 나스카 라인에 곧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을 했다. 눈이 번쩍 뜨였다.가장 먼저 보인 것은 고래 그림이었다. 다소 희미해서 주의 깊게 봐야 했지만 틀림없었다. 탑승객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다음은 우주인. 눈이 커다란 ‘어떤 존재’가 우리를 향해 ‘안녕’이라고 인사하듯 손을 들고 있었다. 계속해서 콘도르, 개, 꼬리 감은 원숭이, 벌새, 거미, 앵무새 등 사진으로만 보던 지상화가 연이어 모습을 드러냈다. 비행기가 워낙 빨라서 똑바로 볼 수 있는 시간은 10초도 채 되지 않았다. 짧지만 강렬한 만남이었다.
멀미가 날 정도로 급선회를 반복하던 경비행기는 30분간의 비행을 마치고 다시 피스코 공항으로 기수를 돌렸다. 돌아가는 길에 내려다 보니 나스카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척박한 땅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먹고 살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저런 그림을 그린 것일까.
수수께끼의 나스카 라인은 적어도 1400년 전에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20세기 초반에 들어서야 인류는 하늘을 날 수 있었다. 의문이 더해만 간다. 비행기도 없던 시절에 어떻게 이처럼 완벽한 작업을 할 수 있었을까. 미국 보스턴대의 천문학자 제럴드 호킨스 교수에 따르면 거미 그림은 아마존 열대우림 속 오지에만 사는 ‘리치눌레이’를 그린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거미 중 하나다. 특히 거미 그림 오른쪽 다리 끝에는 생식기까지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현미경이 없으면 볼 수 없다고 한다.
다시 생각에 잠겼다.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방금 스쳐간 나스카의 우주인 그림이 떠오른다. 대체 누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일까. 폭발하듯 쏟아져 나오는 질문들에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스카 라인을 본 뒤 머리가 복잡해졌다. 기분도 전환할 겸 페루의 다채로운 즐거움을 만나러 떠났다. 피스코 공항에서 남쪽으로 20㎞ 정도 내려가면 파라카스(Paracas)가 나온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 여행자들은 ‘새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바예스타 섬(Isla Ballestas) 관광을 한다.
파라카스 항에서 스피드보트로 30분 정도 가면 닿는 바예스타 섬은 ‘가난한 자의 갈라파고스’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조롱이 아니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생태의 보고’라 불리는 갈라파고스와 맞먹는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칭찬이니까. 갈라파고스는 에콰도르 본토에서 서쪽으로 약 1000㎞ 떨어져 있는데 비행기로 3시간 넘게 걸리며 비용도 적지 않게 든다. 하지만 바예스타 섬 관광은 현지 여행사를 통하면 2만원 안팎으로 다녀올 수 있다.
가격은 싸지만 내용은 알차다. 멀리서 보니 높이 50m, 너비 150m 크기의 섬에 깨알 같은 점이 가득 박혀 있다. 전부 새다. 정말이지 그렇게 많은 새는 처음 봤다. 보트가 섬에 다가가자 관광객을 반기기라도 하듯 수많은 새들이 머리 위를 선회하고, 수면 위를 낮게 나는 새떼가 손에 잡힐 듯 옆을 지나갔다. 새를 쫓아 사진을 찍을 필요가 없었다. 그냥 하늘에 대고 셔터를 누르면 수많은 새들이 알아서 렌즈 안에 담겼다. 같이 탄 관광객들은 간간이 떨어지는 새똥을 맞으면서도 환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바예스타 섬 관광에는 오가는 시간을 포함해 약 2~3시간 걸린다. 갈라파고스에 가는 비용의 1% 정도만으로 충분히 만족감을 선사한다. 나스카 라인 관광과 연계해 당일 여행이 가능한 만큼 놓치면 아쉽다.
사막 속 아라비안나이트가 실현된다
모래언덕을 내달리던 자동차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움직인다. 거의 수직으로 내려꽂히다가 갑자기 상승하기를 반복한다. 절로 비명이 터지고 금방이라도 차가 뒤집힐 것 같은 아찔함에 간담이 서늘하다. 허리와 목이 뻐근해졌다. “이제 그만 하자!”고 한국어로 고함을 쳐도 운전사는 이를 환호성으로 알아들었는지 위험천만한 운전을 이어갔다. 속이 메슥거려 차에서 내린 후에도 한참이나 숨을 가다듬었다.
해가 저물자 운전사는 다시 차를 어디론가 몰았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촛불을 밝힌 베두인 족의 텐트가 나타났다. 부드러운 모래언덕을 등진 사막 한가운데에 만들어진 레스토랑이다. 텐트 속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자 꼬치와 과일을 포함한 식사와 함께 샴페인, 맥주가 식탁에 놓인다. 센스 넘치는 지배인이 대형 스피커를 통해 음악도 틀어준다. 은은한 조명과 함께하는 낭만적인 시간 속에서 모두가 취기에 얼굴을 붉힌다.
현지 여행사인 티카리이(tikariy.com.pe/en)에서 사막 레이스와 캔들라이트 저녁식사를 포함한 상품을 판매한다. 총 4시간 정도가 걸리며 가격은 약 300달러다.
쿠스코의 북쪽 언덕으로 올라가면 잉카의 성채로 알려진 삭사이와만(Saksaywaman)이 있다. 각기 다른 모양의 거대한 돌이 조화롭게 쌓인 모습을 보면 다시 한번 외계인의 존재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먼저 벽을 구성하고 있는 돌의 규모가 엄청나다. 몇 t에 달하는 것은 흔하고, 가장 큰 돌은 높이가 8.5m, 무게는 약 361t에 이른다. 크기만 대단한 것이 아니다. 염소의 일종인 야마(llama)의 모양을 새긴 벽도 있다. 돌의 모양은 야마의 모습을 꼭 닮았는데 귀, 머리, 목, 몸통, 꼬리까지 있다. 이것은 단순히 벽을 만드는 데 집중한 것이 아니라 치밀한 설계대로 성채를 쌓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잉카인들은 철을 다루지 못했다. 단단한 돌을 자르거나 다듬는 데도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대체 어떻게 저 무거운 돌을 절단하고 마무리해서 틈 하나 없이 원하는 대로 쌓았을까. ‘돌의 마법’이라도 익힌 듯한 우주적 기술력이다. 게다가 이곳의 돌은 다른 곳의 채석장에서 운반해 왔다. 바퀴도 몰랐던 잉카인들이 험로를 뚫고 인력으로 바위를 잡아 당겨서 옮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우리 일행의 가이드는 ‘헛소리’임을 전제로 “잉카문명은 ‘외계인의 작품’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부할수록 ‘외계인 작품설’을 믿게 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웃어넘겼지만 점점 동감하게 됐다. 그만큼 믿기지 않는 흔적이 페루 곳곳에 남아 있다.
건축 기술뿐만 아니라 농경 분야에서도 잉카문명의 신비는 끊이지 않았다. 쿠스코에서 북서쪽으로 46㎞ 정도 올라가면 모라이(Moray)가 나온다. 다가가서 내려다보니 상당히 독특하다. 잉카인들이 농업기술을 연구하던 곳이라는 설명이 없었다면 비행접시 착륙장이라고 여겼을 만한 디자인이다.
잉카인들은 특유의 석조 기술을 이용해 급경사에 원형의 계단식 논을 만들었다. 동심원 형태의 계단식 논은 점점 작아지면서 아래로 내려간다. 모두 24개 층으로 구성됐다. 평균적으로 고도가 100m 올라갈 때 기온은 약 0.65도씩 떨어진다. 하지만 모라이는 맨 아래 밭과 맨 위 밭의 높이차가 140m 정도임에도 온도차는 5도나 된다. 그만큼 변화가 심하다. 이것이 모라이의 특징이자 핵심이다.
잉카인들은 모라이의 지질 특성을 활용해 감자나 옥수수의 생육환경을 개량했다. 예를 들어 일정 온도 이상에서만 자라는 감자를 가져와 가장 따뜻한 맨 아래 밭에서 키우다 조금씩 상위 계단밭으로 옮기면서 낮은 온도에 적응시켰다. 이렇게 고산지대의 온도에 익숙해진 감자는 고도에 상관없이 어디서나 자랄 수 있게 됐다. 잉카제국이 식량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동시에 남미의 패자가 된 비결이 모라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모라이의 지질적 비밀을 잉카인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우연이 아니라면 누가 알려줬을까. 파고들수록 궁금증을 더해가는 잉카의 신비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왜?’라는 의문부호를 던지고 있다.
페루 여행 Tip
리마·쿠스코(페루)=글·사진 김명상 기자 ter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