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안정성 격차 갈수록 커지는데…노사정위, 의제설정에만 4개월 걸려

임금체계 등 5대 의제 확정
한국 노동시장의 문제점은 한마디로 ‘지속 가능성의 위기’다. 베이비붐 세대의 고용시장 퇴장이 본격화됐고 고령화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기업 규모와 고용 형태에 따른 고용 안정성 격차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속 가능성 위기를 타개할 수단으로 정년 60세 법제화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통상임금 기준 확립,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또는 원청과 하청 간 격차 축소, 인사관리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 사회안전망 강화 등을 꼽고 있다.특히 기업의 노무비용을 증가시켜 신규 고용 여력을 줄이는 기존의 연공형 임금체계는 하루빨리 직무나 성과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개편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노동시장 정책방향 보고서에서 “단체협약상 과도한 고용 보호 조항을 억제할 수 있도록 ‘무기대등의 원칙’을 적용해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정리해고 시 금전적 보상제도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정리해고 요건 완화 등 노동시장 유연화 방안에 대해 반발하며 대화 테이블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지난 8월 8개월 만에 어렵게 재가동된 노사정위원회는 이후 4개월 동안 의제 설정조차 못 하다가, 2일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 4차회의에서야 노동시장 이중구조, 임금·근로시간·정년연장 등 5대 의제별 14개 세부과제를 확정했다.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은 “오늘 의제별 세부과제가 선정된 만큼 19일 전체회의에서는 통상임금, 근로시간, 임금체계 등 3대 과제를 깊이있게 논의하자”며 전문가그룹에 속도 있는 논의를 주문했다.

정부 부처 간 엇박자도 상황을 더 꼬이게 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이찬우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의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정규직 고용 유연성 확대’ 발언은 기존의 난맥상에 ‘기름’을 부었다. 당장 노동계와 야당은 정부가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대한 노동계 요구에는 답하지 않고, 정규직마저 해고를 자유롭게 해 근로자들을 하향 평준화하려는 의도라고 비난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바로 다음날 열린 기재부 출입기자단 정책세미나에서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로 기업들이 겁이 나서 채용을 못 하는 상황에서 임금 체계를 바꾸는 등의 타협이 필요하다”며 정책추진 방향이 ‘고용 유연화’가 아닌 ‘임금 유연화’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노동계의 반발이 잦아들기는커녕 이번에는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까지 불만을 표출하고 나섰다.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노동계를 설득해 대화해야 할 시점에 경제정책 총괄부처인 기재부와 노동시장 소관 부처인 고용부가 불협화음을 내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