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가예산을 형님동생 하며 나눠 가져도 좋은 것인가

법정시한은 겨우 지켰지만 예산안 처리과정을 보면 구습은 여전하다. 그렇게 비판해도 쪽지예산은 그대로다. 예산심의라는 명분으로 국회를 대한민국 제일의 ‘슈퍼 특갑’으로 만든 관행도 공고해졌다. 국회의 예산심의권과 정부의 예산편성권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와 제도개선이 절실해졌다.

확정된 내년 예산은 375조4000억원, 정부안보다 6000억원 줄었다. 이 와중에 지역 SOC예산은 4000억원 증가했다. 힘깨나 쓴다는 지역구 출신 의원들이 슬쩍슬쩍 번갈아 끼워넣은 쪽지예산이다. 선수(選數)에 따라, 실세 입김에 따라 춤춰온 해묵은 예산전쟁은 올해도 여야가 따로 없다. 예결위원장인 홍문표 의원의 지역구 사업에 46억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김재원 의원의 지역구에 15억원이 증액됐다고 한다. 새정치연합 쪽에서도 원내대표 우윤근 의원과 문희상 비대위원장의 지역구에 각각 25억원, 13억7000만원 늘었다는 분석이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인 이정현 의원의 전남 지역구에는 정부안보다 200억원이 더 배정됐다는 말도 들린다. 사실 이런 비판조차 함부로 쓸 수 없다. 이들 의원에게는 “내가 욕을 먹으면서까지 이렇게 더 당겨왔노라”며 자랑삼을 증거가 될 뿐이다.예산안 편성은 한정된 국가의 자원을 가치 원칙에 따라 배정하는 과정이다. 국방과 복지, 연구개발(R&D) 등 국정 전반에 걸쳐 철저하게 합리적이며 냉정한 배분이 필요하다. 한쪽에서 늘리면 다른 쪽을 조정해야 한다. 칼자루 잡았다고 장물을 나누듯 해치우면 국가 전체의 이익기준은 훼손되고 만다. 국가의 이익이 지역 이익에 종속될 수는 없다. 올해는 쪽지예산이 없을 것이라던 여야의 호언은 또 빈말이 됐다. 이때만큼은 여야가 누이 좋고 매부 좋게 한통속이 된다.

각 정당의 위계질서라는 것도 그렇다. 선수에 따라 소위 끗발이 정해지다 보니 정당의 분위기에 무슨 봉숭아학당 비슷한 느낌까지 풍긴다. 여기에 다시 실세 여부에 따라 나랏살림을 찢어 갖는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타락에 불과하다. 지역구를 봉토화하는 것과도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