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경기따라 해고도 탄력적"…한국 국회엔 노동규제 법안 쏟아져

노동시장, 글로벌 스탠더드로
(3·끝) 전문가 좌담회

참석자
하갑래 단국대 법학과 교수
배규식 노동연구원 본부장
박지순 고려대 법학대학원 교수

사회=윤기설 한경좋은일터연구소장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지난 2일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 4차 회의를 열고 시급히 다뤄야 할 의제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임금·근로시간·정년연장, 사회안전망 확충 등 5대 의제별 14개 세부과제를 확정했다. 지난 8월 노사정위가 어렵사리 재가동된 지 4개월여 만이다.

다행히 노·사·정이 한자리에 모여 시급한 노동현안을 논의하는 틀이 갖춰졌지만, 이를 둘러싼 환경은 향후 논의 과정의 험로를 예고하고 있다. 이달 중 나올 예정인 노동분야 경제운용방향 종합대책을 앞두고 총괄부처인 기획재정부와 노동시장 소관부처인 고용노동부 사이에 엇박자가 나고 있고, 정규직 정리해고 및 중규직 신설 등 기재부 관계자들의 발언에 노동계와 야당이 반발하고 있다. 이에 한국경제신문은 노·사·정의 활발한 논의를 촉진하고 노동시장 선진화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사회정책연구본부장, 하갑래 단국대 법대 교수가 머리를 맞댔다.
윤기설 소장
▶윤기설 한경좋은일터연구소장=한국 노동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을 꼽는다면.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사회정책연구본부장=역시 양극화다. 임금이 오를 때 정규직은 상당히 빠르게 오르고 비정규직은 천천히 오르다 보니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일본의 대졸 취업자는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 월평균 20만엔(약 186만원)정도를 받는다. 처음부터 두세 배 차이 나는 우리와는 출발 조건 자체가 다르다. 기업 규모나 고용형태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더라도 그 차이가 너무 크다. 사회통합을 위해서도 전 사회적으로 대응할 문제다.▷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세 가지로 본다. 비정규직의 양적 확대와 질적인 차원에서 임금 격차, 그리고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장벽이다. 우선 비정규직이 너무 많이 늘었고, 고용형태가 고착화되면서 이동성이 차단된 상황이다. 이는 청년들의 미래가 불안하다는 뜻이고, 자아실현이라는 가치가 의심받고 있다. 우리 사회의 발전 동력이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하갑래 단국대 법대 교수=이중구조의 문제가 심각하다. 양극화가 심해지면 국가는 성장에 사용할 자원을 격차 해소에 투입할 수밖에 없다. 즉 이중구조의 문제는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다. 더욱이 우리 사회에는 실업자냐 취업자냐, 임금근로자냐 자영업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 포함)냐, 임금근로자 내에서도 정규직이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식으로 이중구조를 넘어 삼중구조화, 다중구조화 상태다.

▶윤 소장=노사정위에서는 경영계가 하나 내주면 노동계도 하나 양보하는 식의 이른바 ‘패키지딜’을 추진 중이다.▷배 본부장=솔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대기업이나 공공부문 일자리의 경우 노동비용이 상당히 높다. 따라서 노동시장 개혁은 유연성 측면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많이 받는 부분은 좀 낮추고 적게 받는 부분은 올리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또 중간층 일자리를 만드는 방법도 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일자리를 만들 때 왜 연봉 5000만원, 6000만원짜리만 만드나. 3000만원, 4000만원짜리도 만들면 양극화 완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노사가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박 교수=일본 히로시마전철이 좋은 예다. 일본 전철이 민영화되면서 정규직은 줄고 저임금 계약직 사원이 많이 늘어났다. 당연히 노조 조직력은 약화되고 근로자 간 소득 격차가 늘면서 노조 측에서 들고나온 카드가 임금체계 개혁이었다. 고임금 정규직들이 1인당 월 5만엔(약 47만원)씩 적게 받고 그만큼을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사용한 것이다. 1990년대 폭스바겐이 불황을 극복한 것은 구조조정이 아니라 근로시간 단축이었다. 한 명의 실업자를 만드느니 다같이 허리띠를 졸라맸던 것이다. 반면 우리 노동조합은 자기희생적인 개혁에는 관심이 없고, 나머지는 고용시장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하 교수=노동시장 유연화와 약자 보호는 함께 갈 수 있다고 본다. 유연화는 고용창출을 위해 근로시간을 줄이고 해고요건을 완화하는 것이고, 취약 근로자 보호 문제는 격차 해소가 핵심이다. 차별 해소 방안은 제도로 접근해야 한다. 가령 공휴일의 경우 공무원이나 공기업 대기업 직원은 모두 유급으로 쉬는데, 영세기업은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은 기업이 지켜야 할 최저 수준을 근로조건으로 제시한 것이므로, 그 수준을 낮추더라도 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윤 소장=파견·기간제 제한이 오히려 고용시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

▷박 교수=독일도 하도급 문제가 큰 이슈인데, 흥미로운 분석이 있다. 독일에도 업종 제한은 아니지만 파견 규제가 있는데, 파견 근로자의 낮은 임금 수준이 사회문제가 됐다. 이후 정규직의 60% 수준이던 파견 근로자의 임금이 90% 수준으로 오르면서 기업은 파견 대신 도급 활용을 늘린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파견제를 제대로 써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분석이 있을 수가 없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이야기하면서 파견에 대해서는 말을 못하고 있는데, 파견 제한으로 늘어난 용역 문제(풍선 효과)는 파견 제한 완화로 풀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배 본부장=생각이 좀 다르다. 한국은 파견에 비해 기간제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기간제 규제를 풀어놓으면 이중구조는 더 심화될 것이다. 따라서 규제 완화를 하더라도 사후에 어떻게 적절히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해외 사례만 보고 면밀한 분석 없이 파견 제한을 푼다면 둑에 구멍을 내는 것일 수도 있다.

▶윤 소장=눈앞의 이익만 쫓는 일부 대기업 노조도 있다.

▷하 교수=그런 행태가 10% 수준에 머무는 노조조직률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노조가 사회적 책임 의식 없이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는 행태가 계속되다 보니 국민들은 점점 노동조합을 부정적으로 보게 된 것이다. 이대로라면 노동운동은 점점 위축돼 결국엔 자멸할 수도 있다.

▷배 본부장=권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노사관계에 있어 주연은 기업이다. 최근 현대중공업의 경우를 일반화해 전체 노동조합의 모습으로 인식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또 현재 우리 사회에 파업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다만 투쟁 관성에 젖은 양적인 노동운동에서 질적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인 것은 맞다고 본다.

▷박 교수=일부 강성노조의 행위를 가지고 노사관계 전반을 판단하는 것은 성급할 수 있다는 점엔 동의한다. 하지만 국민들의 시선에서 봐야 한다. 과거에는 노조가 동조대상이었지만, 지금은 ‘정규직 노조=귀족’이라는 시선이 많다. 대기업 노조가 산별은 아니지만 파급효과를 볼 때 산별 정도의 규모가 된 마당에 그 파급효과를 고려하면 단기적인 자체 이익 실현보다는 중장기적·구조적 노조운동을 해야 한다고 본다. 기업 간은 물론 근로자끼리도 네트워킹이 돼 있는 사회에서 (하청 근로자들에 대한) 대승적인 노조 전략이 필요하다.

“노동정책, 유연성은 없고 보호에만 편향”

“노동시장 정책이 ‘보호’라는 한쪽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하갑래 단국대 법대 교수는 현재 해고 요건 및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 국회에 계류된 법안들의 ‘편향성’을 이렇게 지적했다.

하 교수는 “경영상 해고 요건을 강화하는 법안이 국회에 가 있지만, 노동시장 유연성과 조화를 이루는 법안은 보이지 않는다”며 경기 상황에 따라 고용안정 정책을 유연하게 운용하는 독일 사례를 소개했다. 독일은 해고제한법의 적용 대상을 경기가 좋을 때는 5인 초과 사업장으로, 경기가 나쁠 때는 10인 초과 기업에 탄력적으로 적용한다.

근로시간 단축 논의와 관련해서도 노사 자율에 일정 부분 맡겨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하 교수는 “일본의 경우 재량근로시간제를 전문업무에서 기획업무까지 확대했고, 최근에는 미국식의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white collar exemption·고임금 사무직 근로자에 대해 최저임금이나 초과수당을 적용하지 않는 제도)’과 비슷한 형태의 새 근로시간제도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용기간 제한(현재 2년)에 대해 “사용기간은 좀 더 유연하게 하되, 계약기간 종료 이후의 조치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며 “기업과 근로자 모두가 예측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리=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사진=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