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위기 속에 기회 있다

구조적 장기침체 우려되는 경제
日기업 인수 등 해외투자 늘리고
中 소비시장 개척서 활로 찾아야

이인실 < 서강대 경제학 교수 insill723@sogang.ac.kr >
벌써 갑오년 한 해를 마무리할 때가 됐다. 필자가 어렸을 적에는 연말행사 중 하나가 온가족이 공중목욕탕에 가는 일이었다. 뜨거운 물에 불린 때를 이태리 타월로 밀어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로 목욕탕 문을 나설 때면 “딴 인물이 됐네”하는 어머니의 칭찬에 기분이 우쭐했던 기억이 새롭다.

최근 수년간의 한국 경제 상황은 할 수만 있다면 목욕탕에 집어넣어서라도 반짝거리게 닦아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올해 한국 경제는 작년의 3.0%보다 높은 3%대 중반의 성장률이 예상되는데도 전반적인 분위기는 작년보다 더 어둡기 때문이다. 며칠 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도 경제전망을 발표하면서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5월의 전망치에서 또 0.3~0.4%포인트씩 하향 조정했다. 말이 하향 조정이지 세계 경제가 예상대로 성장세를 회복하고 대내적으로 확장적 거시경제정책이 원활히 실행될 경우라는 전제를 단 것을 보면 사실상 빨간불을 켠 경고를 한 셈이다.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과 신흥국들이 금융교과서를 새로 써야할 정도로 비정상적인 방법의 통화정책을 써서 통화를 확대 공급하고 재정지출을 늘렸지만 결국 세계 경제는 구조적 장기정체(secular stagnation)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의 양적 완화가 종료되고 이웃 나라를 거지로 만드는 근린궁핍화정책으로 비난받는 일본의 무제한 돈 풀기로 인해 한국의 경제전망은 더 암울해지고 있다. 엔화 약세가 가속화되면서 일본 기업과 직접적 경쟁관계에 있는 우리 기업들의 이익이 급감했다. 시가총액 1, 2위 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그룹마저 영업이익이 크게 줄어 2013년보다 주가 수준이 낮아졌다. 중국 등 경쟁국들의 추격과 공급과잉 우려가 겹쳐진 정유, 화학, 조선, 기계 등 한국의 간판 제조업종은 기업별 인원 감축 등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거나 준비 중이다. 정보기술(IT)산업의 전망 또한 어둡기만 하다. 한국정보산업연합회에 따르면 민간부문의 IT 투자 감소와 대규모 프로젝트가 실종돼 내년 경기는 더 나빠질 것이란 예측이 우세하다. 그나마 화장품, 음식료, 통신, 패션, 레저산업 등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일부 수혜업종만 좀 나은 모습을 보일 뿐이다.

그렇다고 비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원화가 엔화나 유로화에 대해 지나치게 강세로 가는 것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한국은행이 양적 완화와 유사한 정책을 펼친다면 긍정적인 면도 기대할 수 있다. 일본이 양적 완화정책을 펼치면서 일본 연기금들이 해외 투자를 늘려갈 것으로 예상되는 바 미국의 금리인상 이후 빠져나갈 미국계 투자자금 공백을 이들 일본자금이 메울 수 있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엔화 약세를 역으로 이용해 일본 소재기업 등에 투자하면서 그동안 일본 기업에 밀렸던 기술경쟁력을 높이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올해도 경상수지 흑자가 지난해 799억달러보다 많은 900억달러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해외 투자 확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가계 또한 금융자산 투자를 다변화해 통화가치가 하락하는 일본과 유로지역에 투자하는 등 해외에서 수익을 늘릴 기회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내년에 중국과의 FTA가 발효되면 중국형 소비 개선이 국내 기업들의 이익을 높여주는 견인차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중국은 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2021년까지 모든 인민이 먹고사는 것에 지장이 없고, 문화생활도 누리는 ‘샤오캉(小康)사회’를 구현하겠다는 목표를 실천해 나가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위안화 사용을 확대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나 중국 금융시장의 선진화 로드맵은 중국 소비자들의 구매 여력 증대로 이어질 것이다. 특히 중국인들의 소비 고급화가 진행되면 한국 제품이 중국 시장에서 입지를 구축하는 데 한몫할 수 있다. 내년도 세계 경제나 한국을 둘러싼 대외적 환경이 어두운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가 어려운 때일수록 숨은 기회를 찾아내야 살 길이 보인다.

이인실 < 서강대 경제학 교수 insill723@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