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통화위기] 생필품 사재기·환전소 북적…"러 경제 최후의 심판 시작됐다"

경제 상황 어떻길래…

低유가·서방 제재 '이중 사슬'…식료품값 올들어 25% 폭등
메밀은 '구매 쿼터제' 등장…현금인출기도 텅텅 비어
< 벼랑 끝에 선 푸틴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모습을 한 전통 인형 마트료시카가 15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붉은광장 인근 상점에 전시돼 있다. 이날 루블화 가치는 달러당 64.45루블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모스크바EPA연합뉴스
‘러시아 현금인출기엔 현금이 없다’ 올 들어 달러 대비 루블화 가치가 반토막 나면서 러시아 실물 경제가 완전히 망가졌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이 16일(현지시간) 이같이 보도했다. 러시아유통협회에 따르면 주요 도시의 식료품 가격은 올 들어 약 25% 급등했다. 루블화 가치가 하락세인 데다 서방 식품에 대한 금수 조치로 식량 공급줄마저 끊겼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수도 모스크바를 포함한 주요 도시 식료품점에는 물건을 사재기하는 시민들로 붐비고, 환전소 곳곳에선 루블을 달러나 유로로 환전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며 “러시아 경제에 대한 ‘최후의 심판’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메밀 사재기 극성…올 65% 폭등
올 들어 러시아의 돼지고기와 설탕 가격은 25%, 생선 등 해산물 가격은 약 15% 올랐다. 이달 들어 첫 1주일 새 달걀, 토마토, 양배추값은 최고 6.2% 상승했다.

한국의 쌀처럼 러시아에서 시리얼이나 카샤(죽), 블리니(팬케이크)로 만들어 먹는 메밀 가격은 올 들어 65% 폭등했다. FT는 “일부 지역에서 메밀값이 50~80%까지 급등해 1인당 5봉지 이하로 구매 가능한 ‘쿼터제’까지 등장했다”며 “서민 경제에 주름이 깊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식품 가격 상승으로 러시아 중앙은행이 발표한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9.4%를 기록했다.러시아 생필품 가격을 끌어올린 가장 큰 원인은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의 제재 조치다. 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압박용 카드로 각종 제재를 시행했고, 러시아 정부는 이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8월부터 유럽, 미국, 캐나다, 호주산 식료품 수입 금지를 단행했다. 하지만 해바라기씨 오일, 밀, 달걀 등 일부 식품을 제외하고 식품 자립이 불가능한 러시아인들은 겨울이 다가오며 불안에 휩싸였다. 메밀을 대체할 식료품마저 사라지면서 사람들은 식료품 사재기를 시작했고, 길거리에는 ‘추억의 메밀죽’을 파는 상인들까지 등장했다.

◆스태그플레이션 위기

러시아는 지금 경제성장률은 하락하는 가운데 물가는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위기에 놓여 있다. 러시아 경제의 악재는 서방 제재에 이은 유가 하락이다. 러시아 재정 수입과 무역 수지는 원유 수출에 각각 50%, 67%를 의존하고 있다. 올 상반기까지 서방의 제재에도 꿈쩍하지 않던 러시아 경제는 유가가 심리적 저지선인 배럴당 60달러 밑으로 붕괴하면서 급속히 악화됐다. 러시아 정부는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연 1.2%에서 연 -0.8%로 낮춰 잡았다. 러시아 재정 균형은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에서 거래된다는 가정에서 달성되도록 짜여 있어 적자재정이 불가피하다.러시아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벼랑 끝에 서게 됐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푸틴 정부의 지지율은 10월보다 7%포인트 하락한 59%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