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음모론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피라미드 같은 거대한 고대 건축물들은 그 규모가 놀랍기도 하고 어떻게 지어졌는지 알 수가 없어서 그저 ‘원더(wonder·불가사의)’라고 부른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과관계가 불명확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외계인들이 지구에 왔다가 피라미드를 남겼다”고 해줘야 직성이 풀린다. 여기다 외계인들이 징표까지 남겨놓았는데 미국 등이 숨기고 있는 것이라는 음모론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음모론을 믿는 사람은 모든 사건에는 원인과 결과가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누군가가 꾸민 일이라고 하면 아주 약한 증거와 가정도 받아들인다. 예를 들면 히틀러가 여전히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증거는 ‘그를 본 사람이 있다’는 정도다.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몇 년 전 ‘세계 10대 음모론’을 소개한 적이 있다. 9·11테러 미국 정부 자작설, ‘에어리어 51’ 외계인 거주설, 엘비스 생존설, 아폴로 11호 달 착륙 연출설, 셰익스피어 가공인물설, 예수 결혼설, 파충류 외계인 지구지배설, 에이즈 개발설, 존 F 케네디 암살 배후설, 다이애나 사망 영국왕실 개입설 등이다. 당국의 공식적인 설명은 믿을 수 없어 끊임없이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는 사건들이다. 이 가운데 9·11테러 자작설이나 달 착륙 연출설 등은 실제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돼 음모론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음모론은 흥미를 자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음모론은 사람들의 공포와 불안감에서 자라난다. 올 들어 퍼지고 있는 음모론 중에는 에볼라가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만든 생화학무기의 하나라는 설도 있다. 거대 제약회사가 치료약을 팔기 위해 에볼라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는 주장이다.

가장 최근의 음모론은 국제 유가 때문에 나왔다. 이번에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등장한다. 두 나라가 러시아, 이란 등을 약화시키기 위해 원유 가격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시각은 사우디가 미국의 셰일가스 업체들을 도산시키려고 계속 가격을 내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1년 사이 유가가 반토막이 났으니 그런 얘기가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가격 시스템의 복잡성을 생각하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다.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을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시도를 하는 음모론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하지만 정설과는 엄연히 다르다. 인터넷 세상에선 그 구분이 참 어려워 걱정이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