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윤종규 KB금융 회장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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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규 금융부 기자 black0419@hankyung.com“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국민은행장의 첫 인사가 자신의 의지보다 금융당국에 휘둘리는 것 아니냐.”
지난달 취임해 첫 인사를 앞둔 윤 회장이 처한 상황에 대한 금융계의 시선이다. 윤 회장이 자신의 경영 구상을 실천할 사람을 선택하는 일에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우려다.금융당국이 KB금융그룹 일부 고위 임원들의 퇴진을 요구했다는 설이 불거지면서 이런 시각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금융당국의 요구도 나름대로 명분은 있다. 금융권을 뒤흔든 이른바 ‘KB사태’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개입은 결과적으로 나쁜 선례를 낳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해당 임원들은 사태의 책임을 지고 이미 ‘경징계’를 받았다. 후속 인사조치는 윤 회장이 결정할 몫이다. 퇴진해야 하는 ‘직무 정지’나 ‘해임 권고’ 등의 중징계가 아닌데도 징계를 내린 당사자가 사퇴를 압박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결과적으로 윤종규호(號)는 출발부터 큰 풍파에 직면했다. 해당 임원들을 인사조치하지 않으면 정부에 밉보일 게 뻔하다. 당국의 승인만 남겨 놓은 LIG손해보험 인수문제를 생각하면 어떤 식으로든 성의를 보여야 한다.‘임원 몇 명 옷 벗기는 게 뭐 그리 대수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니다. 외부 입김에 휘둘려 첫 인사부터 끌려다니면서 리더십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다. 오직 ‘성과와 역량만 보고 인사하겠다’며 큰소리친 게 엊그제 일이기 때문이다.
KB금융지주에 사장직을 만드는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금융당국은 사장 자리 신설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윤 회장은 자칫 ‘제2의 KB금융 사태’를 부를 수도 있다며 부정적이다. 혹여 누군가의 입김을 등에 업은 사장이 선임될 경우 내분이 재연될 수 있어서다.
KB금융은 ‘잘못된 인사’의 대명사로 불린다. 외부 개입을 막지 못한 최고경영진의 무능과 안일이 리딩뱅크를 추락시켰다. 윤 회장의 딜레마 해법은 그래서 간단치 않다. 민간 금융회사 인사에 이처럼 복잡한 정치적인 고려가 있어야 하는 비정상은 이제 마감돼야 한다.
김일규 금융부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