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특별기획] "노동계, 정치판과 너무 닮아…투쟁 위한 투쟁 이제 끝낼 때"

당신은 한국의 미래가 두렵지 않습니까
현장에서 듣는다 - 이경훈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 지부장

이념 투쟁하려면 사상가나 혁명가가 돼야지 노동현장에 있을 필요없어
무리한 파업 국가경쟁력 좀먹어…디트로이트 망하는 것 보고 충격
넥타이 매고 영업 뛸 각오도
울산=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이경훈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 지부장(54)은 왼쪽 새끼손가락 마디 하나가 없다. 스스로 잘랐다. 2011년 8월 타임오프제(근로시간면제 한도제) 도입 등을 앞두고 노사가 팽팽히 맞서던 때였다. 노조 전임자 수를 줄이는 게 핵심이었다. 회사 측은 도입을 강행했고, 노조 내 강경파는 파업을 종용했다. 그는 “나를 믿고 따라 달라”며 3000여명의 조합원이 보는 앞에서 손도끼로 손가락을 내리쳤다. 타임오프제는 도입됐고, 임단협은 마무리됐다. 그해 현대차는 3년 연속 무분규 기록을 세웠다. “단지(斷指) 사건은 회사 측에 투쟁 의지를 보인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파업을 종용하는 노조 내 강경파에게 경고를 보내는 의미도 있었다”고 한다.

이 지부장을 지난 9일 현대차 울산공장 노조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내에서 최대 지분을 가진, 4만7000명의 노조원을 이끄는 한국 최대의 노동현장 조직 리더다. 그는 두 시간 반 동안 “반대를 위한 반대, 투쟁을 위한 투쟁식 노동운동 시대를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운동 방식이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고, 노동자들을 더 힘들게 한다고 했다. 회사 측보다는 노조 내부 개혁을 더 요구했다. 그는 “그런 투쟁을 하려면 사상가나 혁명가를 해야지 왜 노동현장에 남아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최근 대내외 경제환경이 어렵습니다. 이를 더 어렵게하는 것이 연봉 1억원이 넘는 ‘귀족노조의 파업’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일부 동의합니다. 특히 저임금 협력사 노동자들에게 많이 죄송스럽고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현대차 노동자는) 1억원 넘게 받는데 협력사는 5000만~6000만원 받고, 최저임금조차 못 받는 곳도 있고요.”

▷이전 지부장 재직 때 3년 무파업을 이끌었는데 올해는 왜 파업에 나서게 됐나요.“단순히 임금인상 때문이었다면 파업까지 가지 않았을 겁니다. 올해는 통상임금 확대 문제가 걸렸던 게 큰 이유입니다. 저간에는 노조 내 선명성 경쟁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조는 선거로 2년에 한 번씩 위원장을 뽑습니다. 그런데 경쟁이 너무 심합니다. 경쟁과 갈등이 선거 뒤에도 쭉 이어집니다. 회사와 싸워야 할 때도 노조 내부 싸움 때문에 동력을 다 소진합니다.”

▷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예컨대 지난 9월2일 사측과 임금협상안을 놓고 한창 협의를 진행 중이었는데 중간에 그 내용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개돼 버렸습니다. 합의안에 반대하는 노조 강경파가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올린 거죠. 협상장으로 조합원들이 몰려와 ‘타결 절대 반대’를 외치며 난리를 치고…. 교섭 후 총회에서 추인받아야 할 사항을 조합원 일부가 달려들어 안 된다고 하니…. 정말 창피한 일이 많습니다.”▷현대차 비정규직 특별채용안을 금속노조에서 파기하라고 요구한다는데요.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일입니다. 현대차 비정규직의 정규직 특별채용안은 지난 8월28일 금속노조와 현대차 노조,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등 3자가 합의한 사안입니다.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총회에서도 가결했지요. 비정규직 398명이 7주간 교육을 마치고 지난 1일 회사로 처음 출근했습니다. 내일(10일)도 400명이 출근합니다. 모두 정규직 노조원 신분입니다. 그런데 금속노조에서 이런 합의 내용을 파기하라고 합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9월18일 현대차 사내하도급을 불법파견으로 판결한 내용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3심제입니다. 1심 판결이 난 것을 보고 합의를 파기하라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이미 출근하고 있는 조합원들은 또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금속노조의 행태도 선명성 경쟁으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그렇습니다. 전업 노동운동가들의 ‘투쟁을 위한 투쟁’입니다. 노동을 위한 투쟁을 해야지, 왜 투쟁을 위한 투쟁을 합니까. (탁자를 손바닥으로 치면서) 그러려면 왜 노동 현장에 있습니까. 사상가나 혁명가가 돼야지. 노동계도 반성을 많이 해야 합니다.”

▷노동 현장에 투쟁을 위한 투쟁이 많다고 봅니까.

“노동계 상황은 우리 정치 상황과 비슷합니다. 대의명분보다는 집권을 위한 투쟁, 투쟁을 위한 반대, 반대를 위한 반대가 많습니다. 이런 투쟁을 위한 투쟁 풍토가 국가경쟁력을 좀먹고 있는 겁니다. 현대차도 지난 27년간 노동운동을 한다며 이끌어 온 각 조직이 있기 때문에 서로 집권을 위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거지요.”

▷그동안 사내 노조원들에게 탈(脫)이데올로기를 강조해왔다고 들었습니다.

“좌파 이데올로기의 결과를 이미 봤지 않나요. 공산주의에서 얘기하는 공동생산 공동분배가 가능한 현실입니까. 저는 회사에 경쟁력 강화를 얘기합니다. 수소차 디젤차 등 친환경차 연구개발(R&D)을 강화하라고 주문합니다. 한국경제신문이 지적했듯이 한국은 그야말로 샌드위치 신세입니다. 중국이 자동차 기술은 뒤진다고 하지만 돈이 있습니다. 돈으로 기술있는 회사를 인수하고 있잖습니까. 일본은 돈 풀어서 저가로 깔아버리고 있고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2010년 미국 디트로이트에 다녀와서 ‘위기론’을 얘기했습니다.

“대단히 충격을 받았죠. 자동차 도시가 폐허로 변하고 전미자동차노조(UAW)는 초토화되고. ‘노사가 한 발짝만 일찍 합의했더라면 그런 파국은 막았을 텐데’하는 현지 노조위원장의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곧 수입차가 국내 자동차 시장의 30%를 차지한다고 하는데 그때만큼의 충격과 위기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면 회사와 싸울 일이 없겠습니다.

“노사가 ‘상호책임주의’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노사관계가 악순환을 반복한 이유는 노조 잘못은 노조 탓, 회사 잘못도 노조 탓으로 돌렸기 때문입니다. 이는 상호책임주의에 맞지 않습니다. 노조가 원하는 것을 안 된다고 하지 말고 개선할 게 있으면 회사가 선제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저는 노동운동을 하지만 노조도 회사를 위해 할 것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회사를 위해 영업을 해야 한다면 넥타이 매고 영업도 할 생각입니다. 이런 나를 ‘우파’라고 하는데 우파 맞습니다.”

▷현대차 근로자들의 근무 태도에 대한 지적이 많습니다.

“30분 먼저 퇴근하고, 근무 중에 카톡하고, 책 읽고 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거는)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우리 얼굴에 침 뱉는 행동들이다. 고치자.’ 그런 노력으로 아예 없다고 하긴 어렵지만 현장에선 (그런 풍경들이) 많이 개선됐습니다.”

■ 이경훈 지부장 약력

△1960년 전남 담양 출생 △1979년 광주 진흥고 졸업 △1986년 현대자동차 입사 △1987년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집행부 조직쟁의부장'△1993년 현대차지부 집행부 수석부위원장 △1997~2005년 현대차지부장 선거 여섯 차례 출마 △2009년 3대 지부장 당선 △2013년 5대 지부장 재선 ■ 특별취재팀=하영춘 금융부장/차병석 IT과학부장/정종태 정치부 차장/박수진 산업부 차장/안재석 IT과학부 차장/이태명 산업부 기자/임원기 경제부 기자

울산=박수진/하인식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