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문헌보다 더 많은 역사를 말해주는 유물…이 작은 전차에 페르시아가 담겨 있다
입력
수정
지면A29
100대 유물로 보는 세계사
닐 맥그리거 지음 / 강미경 옮김 / 다산초당 / 744쪽 / 4만8000원


황금마차를 탄 행정관은 왕을 대신해 멀리 있는 영지로 시찰을 가는 중이다. 그런데 무장한 호위병이 없다는 건 공공질서가 상당히 안정돼 있음을 보여준다. 전차는 아프가니스탄 동쪽 국경지역에서 발견됐지만 금속세공 기술로 볼 때 페르시아 중앙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마부와 승객은 이란 북서쪽에 살았던 고대 민족인 메디아인의 옷차림을 하고 있는데, 전차 앞에는 이집트 신인 베스의 두상을 새겨놓았다. 작은 전차 하나에 다종교, 다문화의 페르시아 세계관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파푸아뉴기니에서 발견된 ‘새 모양 절굿공이’와 마야의 ‘옥수수 신상’은 1만년 전 빙하시대가 끝나면서 인류가 농경과 정착생활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책에 실린 유물들은 아시아와 유럽은 물론 중동, 아프리카, 남미 등 주요 국가뿐 아니라 작은 부족과 원주민 문화를 망라한다. 조각상, 그림, 꽃병, 의자, 금화·은화와 지폐, 고지도, 인형 등 종류도 다양하다.아시아 유물로는 중국 주나라의 제기, 청동종, 한나라 칠그릇, 당나라 무덤인형, 일본의 청동거울 등과 함께 서기 700~800년께 통일신라기에 만들어진 기와를 영국박물관 대표 유물 100선에 포함시켰다. 이 한 장의 기와를 통해 저자는 통일신라가 수도 경주를 새로 지은 웅장한 기와건물들로 치장했으며 용 문양으로 악귀와 악령을 물리치려 했다는 점, 통일신라기가 한국 역사에서 건축과 문학, 천문학과 수학의 황금기를 구가한 시기였다고 설명한다.
문자기록이 전해주는 역사 정보는 명료하지만 제한적이다. 이에 비해 유물은 덜 명료하지만 훨씬 방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물론 그 정보를 읽어내려면 다양한 학문 지식과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이 책은 유물에 담긴 방대한 정보를 어떻게 찾아내고 재구성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수작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