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크리스마스 선물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산타클로스가 사실은 부모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철이 든다고 했던가. 요즘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깊은 밤까지 기다리지도 않는다. 크리스마스는 평소 갖고 싶던 물건을 선물로 받는 날이 돼버렸다.

“1달러 87센트, 그것이 전부였다. 그 가운데 60센트는 잔돈이었다.” 미국 작가 오 헨리의 단편 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소설의 내용은 누구나 안다. 그래도 다시 떠올려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뉴욕의 허름한 동네 월세방에 사는 제임스와 델라는 가난한 부부다. 내일이 크리스마스인데도 서로에게 줄 선물을 준비 못 했다. 델라는 결국 아름다운 갈색머리를 잘랐다. 20달러에 팔아 제임스에게 줄 고급 시곗줄을 샀다.제임스는 아끼던 시계였지만 시곗줄도 없으니 팔아버리기로 한다. 언젠가 델라가 브로드웨이 진열장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사고 싶어했던 고급 머리빗을 선물로 샀다. 그날 밤 제임스가 귀가해 이미 짧은 머리가 된 델라를 보고 놀랐을 때, 델라는 눈물을 머금고 이렇게 말했다. “머리칼은 당신을 위해서 팔았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머리칼은 하나하나 셀 수 있을는지 몰라도 당신에 대한 제 애정은 누구도 셀 수 없을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팔 수 있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선물이라는 메시지가 담긴 이 소설의 원제는 ‘동방박사의 선물’이다. 크리스마스에 서로 거창한 선물을 교환하게 된 것은 상업적 이벤트가 많아진 최근 일인 것 같다. 원래 ‘크리스마스 선물(gift)!’이란 말은 ‘메리 크리스마스!’와 비슷한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주로 미국 남부의 흑인들이 1800년대 중반부터 쓴 말인데, 크리스마스 아침에 누군가를 만나서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먼저 외치면 상대방은 고마워하며 선물을 내놓아야 했다. 선물은 사탕이나 호두 정도였다.

엊그제 모 백화점이 남녀가 애인에게 받고 싶어하는 크리스마스 선물 순위를 조사해봤다. 남자는 화장품, 패션액세서리, 태블릿PC, 지갑, 서류가방 순이었다. 여자는 밍크목도리, 음향기기, 부츠, 지갑, 코트 등을 원했다. 남자가 화장품을, 여자가 음향기기를 받고 싶어한다는 게 올해 특징이라고 백화점 측은 설명했다.그보다 눈에 띄는 것은 ‘정’을 받고 싶어하는 낭만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가을부터 밤마다 정성들여 뜨개질로 짰던 목도리, 조끼, 장갑은 순위에도 없다. 좋아하는 노래를 테이프에 녹음해 온 정성으로 포장하던 여대생과 자신이 줄까지 치며 읽은 시집을 선물하던 문학청년은 연애도 하기 어려운 시절이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