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도 학원 수업…취준생들 "빨간날은 잊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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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리포트 - 연말연시가 더 서러운 대학가·고시촌‘인구론(대학 인문계 졸업생의 90%가 논다)’과 ‘청년실신(청년실업에 학자금 대출도 못 갚는 신용불량자)’으로 표현되는 심각한 취업난 속에 대학가와 고시촌이 성탄절과 연말에도 취업준비생들로 북적이고 있다. 이들 취업준비생에게 가족 연인과 함께 연말을 보내는 것은 먼 나라 얘기였다.
"쪽방서 공부하며 나홀로 식사
직장인 된 친구 만나면 위축
부모님께 죄송…꼭 합격할 것"
지난 24일 저녁 각종 공무원시험 준비 학원이 몰려 있는 서울 노량진 ‘공시촌’ 거리는 고시생들로 붐볐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온 정모씨(29)는 “크리스마스이브라고 해서 별다를 건 없다”며 “고시원에서 홀로 저녁을 먹으며 휴대폰으로 예능 프로그램이나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2년째 이곳에 머물고 있는 정씨는 매달 월세와 생활비, 학원비 등으로 100만원 정도를 쓰고 있다. 그는 “부모님께 불효하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시리다”고 했다.노량진에 있는 대부분 공무원시험 학원은 성탄절은 물론 새해 첫날인 1월1일에도 정상 수업을 한다. W학원 관계자는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와 같은 악재가 있긴 해도 경찰과 세무직 선발 인원이 늘어 수강생이 더 많아졌다”며 “기업 채용시장이 워낙 어려운 만큼 내년엔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림동 고시촌도 비슷한 풍경이었다. 한 고시원 식당에서 혼자 저녁을 먹던 김모씨(29)는 “내년 2월7일 치러지는 고시 1차 시험이 50일도 채 남지 않아 여유가 없다”며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을 뵙고 싶은데, 아직 취직을 못한 데 대한 주변의 시선 때문에…”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이곳에서 4년째 5급 공채(행정고시)를 준비 중이다.
대학 도서관은 겨울방학 중에도 몰려든 취업준비생들로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서울대 도서관 로비에서 만난 송모씨(정치외교학부 4학년·28)는 “곧 대학 동기 송년회가 열리지만 가지 않을 것”이라며 “이미 어엿한 직장인이 된 친구들을 만나면 작아지는 느낌”이라고 털어놨다.중앙대 경영학부 4학년 최모씨(28)도 “하반기 공채에서 50곳에 원서를 냈지만 서류통과는 다섯 곳에 불과했다”며 “연말연시는 도서관에서 토익과 인·적성 동영상 강의를 들으며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해에는 부모님께 무조건 ‘합격’이라는 두 글자를 선물하고 싶다”며 도서관 열람실로 들어갔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