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도전이다] '천송이코트 규제' 풀었더니 금융결제 보안 개척자들 몰려들었다

한계돌파

규제 풀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금융과 정보기술(IT)을 융합해 새 서비스를 제공하는 ‘핀테크(fintech)’ 업체 직원들은 요즘 “천송이 덕분에 살 맛이 난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천송이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여주인공이다. 중국인들이 천송이가 입은 옷(코트)을 한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사려는데 결제를 할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정부가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공인인증서 의무화 규정이 폐지됐고, 익스플로러 이외의 웹브라우저에서는 설치할 수 없는 ‘액티브X’ 족쇄도 풀렸다.

그러자 새로운 사업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공인인증서나 액티브X 없이도 ‘보안’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는 사람들이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지난해 11월 설치된 금융감독원의 핀테크 지원상담센터에는 한 달 동안 35건의 문의가 들어왔는데 이 가운데 절반이 금융결제 보안과 관련된 기업 또는 예비창업자들이었다.“규제 풀리자 자신 생겼다”

전북은행에 간편 송금·결제시스템을 공급하기로 한 김덕상 에이트바이트 대표(사진)가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김 대표는 금융결제 보안과 관련된 특허(스마트칩 인증 서버 및 그 방법)를 갖고 있다.

그는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1인 기업을 차렸는데, 금융결제 보안 시장이 새로 열리는 것을 보고 ‘할 수 있겠다’는 자신을 얻었다”며 “일본과 동남아 등 해외 시장 공략에도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융결제 보안과 관련된 사업을 해온 중소기업 아이투맥스와 함께 전북은행 관련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전북은행이 도입한 시스템은 모바일 기기로 돈을 보낼 때 문자메시지(SMS)나 자동전화(ARS) 확인 없이 신용카드를 스마트폰에 접촉만 하면 된다. 아직은 공인인증서, 보안카드까지 대체하는 수단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시스템을 더 발전시켜 스마트폰과 카드만으로 자금이체와 모바일 쇼핑몰 결제까지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게 김 대표의 포부다. 그는 전북은행과의 계약을 발판 삼아 매출을 늘리기 위해 금융분야 영업전문 인력을 조만간 채용할 계획이다.

“새 길 개척하려는 사람 많아”‘천송이 규제’가 풀린 곳에 사업자들이 몰려드는 것을 본 정부는 뒤늦게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규제 완화가 일자리 창출에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선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새해 중점 사업으로 ‘핀테크 활성화’를 꼽았다. 사전적 보안성 심의제도를 폐지하고 전자금융업을 할 수 있는 자격도 크게 완화할 예정이다. 지금은 10억원 이상의 자본금이 있어야 전자금융업을 할 수 있어 신생기업(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에 부담이 컸다.

정부는 은행 등 금융회사만 할 수 있는 외환업무에도 핀테크 기업들이 진출할 수 있도록 외환거래법까지 전면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업계에서는 지급결제나 자금이체뿐만 아니라 외화송금, 크라우드펀딩, 개인 간(P2P) 대출 분야에서도 규제가 풀리면 사업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정보통신기술)융합학회 공동회장은 “보안을 이유로 규제를 너무 촘촘히 하면 신기술 개발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생길 수 없다”며 “규제가 없어진 곳에 새 길을 개척하려는 사람들이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