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한 개비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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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훈련병 시절 “10분간 휴식, 담배 일 발 장전!”만큼 달콤한 소리가 없었다. 군대와 담배는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입영전야’(최백호)는 “아쉬운 밤, 흐뭇한 밤, 뽀얀 담배연기…”로 가득했고, “한 가치 담배도 나누어 피우는” 사이가 ‘전우’였다. 서양도 마찬가지다.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없다》에선 “담배가 배급될 때 그것은 곧 공격시간이 가까워졌다는 신호였다”고 썼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군대 관련 노랫말이 달라졌다. ‘입영열차 안에서’(김민우), ‘이등병의 편지’(김광석) 등에선 담배가 사라졌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피우던 담배는 16세기 초 스페인에 처음 전해졌다. 아시아엔 1571년 필리핀에 먼저 들어왔고, 1600년 중국에도 유입됐다. 조선에는 광해군 때인 1610년 전후에 전해졌다. 이수광은 《지봉유설》(1614년)에 “근세에 왜국에서 들어왔다”고 기록했다. 광해군은 담배를 혐오했지만 정조 고종 순종 등은 애연가였다고 한다.군가 ‘전우’에서 담배 한 가치는 본래 성냥개비처럼 ‘한 개비’가 맞다. 담배를 낱개로 파는 ‘가치담배’는 ‘개비담배’가 옳은 표기지만 자주 사용돼 표준어에 포함됐다. ‘까치담배’, ‘개피담배’는 잘못된 표기다. 북한에서는 종이로 만 담배(궐련·卷煙)는 개비 수를 따지지 않고 총칭해서 가치담배라고 한다. 보루(담배 10갑)는 종이상자를 뜻하는 일본말 ‘보루바꾸’에서 왔다. 보루를 ‘포, 줄’로 순화토록 권장하지만 아직 어색하다. 북한에선 30갑을 한 보루로 친다.
새해 들어 담뱃값이 대폭 인상되면서 ‘가치담배’가 부활했다고 한다. 80년대 담뱃값이 500원이던 시절 100원에 3개비를 팔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은 1개비에 300원이다. 한 갑이면 6000원이니 25% 비싼 셈이다. 그래도 가난한 애연가들에겐 감지덕지다. 하지만 가치담배는 담배사업법상 불법이다. 정해진 포장과 가격을 어겨 팔면 2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물게 돼 있다. 묵인해 왔을 뿐이다.
미국에도 속칭 ‘루시즈(loosies)’라는 가치담배가 있다. 한 갑에 12달러가 넘는 뉴욕에선 개비당 1달러에 판다. 최근 경찰 단속과정에서 목졸려 숨진 흑인남성도 가치담배를 팔던 불법 행상이었다.새해부터 금연을 결심한 이들이 많다. 금연클리닉이 북적인다. 담뱃값 4500원 중 73.7%(3318원)가 세금·부담금이어서 흡연자들이 ‘정부의 봉’이냐는 볼멘소리가 많다. 기왕 끊을 바엔 돈보다는 건강을 생각해 끊는 게 당당하지 않을까.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