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돌파] IoT시대…기계, 인간의 '아바타'가 되다

한경 데스크·혁신TF CES를 가다

라스베이거스=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실장(가운데), 김정호 수석논설위원(왼쪽 세 번째) 등 한국경제신문 특별취재단·혁신TF가 7일(현지시간) ‘CES 2015’ 전시장을 찾아 정보기술(IT)과 자동차를 결합한 첨단 스마트카 기술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한경 특별취재단·혁신TF는 편집국 데스크와 임원 등 16명으로 구성됐다. 라스베이거스=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한물갔다던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였다. 그런데 화끈하게 되살아났다. 자동차업체들이 전자산업 전시회에 참가하면서 판을 키웠다. 자동차 부품회사들까지 대거 전시장을 점령했다. 중국 전자산업은 인해전술이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일본 전자업계를 밀어내고 선두를 다투고 있었다. TV와 자동차는 서로 사물인터넷(IoT) 플랫폼을 차지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물건과 물건이 연결되는 IoT 시대가 왔다는 것이 확고해졌다.

첫 주제발표자인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은 불과 5년 후인 2020년까지 전자제품의 IoT화를 100%로 끌어올리겠다며 기염을 토했다. 그는 산업의 경쟁구도가 종전의 수직분업에서 기업 간 협업으로 대체될 것이라면서 엘마 프리켄슈타인 BMW 부사장 등 연합군 경영자들을 대거 무대로 끌어올렸다. 세력의 과시였다. 도요타가 뜬금없이 상용 수소전지차를 공개해 주목받은 것 외에 일본 업체들은 대체로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20세기까지의 산업문명은 ‘인간 고유 능력’의 기계적, 전자적 확장이었다. 모두 미국제이기도 했다. 전화라는 희한한 물건이 만들어진 것은 1876년 미국이었다. 전구는 1879년이었다. 20세기 벽두에 미국인은 하늘에 비행기를 날렸다. 1903년이었다. 자동차 모델 T가 1908년이었다. 세탁기 냉장고 TV는 1920년대에 태어났다. 껑충껑충 넘어가더라도 레이저 1958년, 산업용 로봇이 1961년이었다.이 물건들은 지금까지 자신만의 고유한 기능으로 인간의 삶을 바꾸어왔다. 인간의 노동은 그렇게 점차 기계로 대체되고 확장, 강화됐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의 감각과 감정, 오락과 재미가 그 자체로 산업화하는 새로운 문명 패턴으로 이행하고 있다. 기계와 도구들이 인간을 닮도록 재창조되는 과정인 것이다. 지금부터는 상상과 꿈, 놀이와 재미가 인간 문명의 중심을 차지하게 될 전망이다. 20세기가 만든 필수적 도구들이 이제 각기 인간의 아바타로 재구성된다고 부를 만한 풍경이 바로 IoT인 것이다.

“재미있고 기발하게”가 모든 제품 콘셉트

“김 기사, 출발해!”라고 말하면 자동차는 스스로 출발하고 달리고 주차하고 차고로 돌아가는 시대가 왔다. 현대자동차 벤츠 포드 등 자동차 회사들은 모터쇼가 아닌 전자쇼에서 기능의 예리함이 아니라 인간에게 복종하는 감성의 예민함을 다투었다. 중국은 CES 3년차인 하이얼을 비롯해 수백개 기업이 참가했다. 중국 중소기업들은 스마트워치를 대거 전시해 놓고 아예 30달러 선에 팔고 있다. 중국관은 관람객이 상대적으로 적었으나 다른 부스들, 예를 들어 삼성전자나 LG전자 부스에는 중국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인해전술이었다. 저 거대한 인간의 물결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명백했다. 삼성전자나 LG전자 사람들은 아직 멀었다고 자신감을 보였지만 구경꾼의 가슴 속엔 먹구름이 피어올랐다.기존 기술의 연결과 기업간 진영 편성 활발

무인비행기는 올해 CES에서 가장 주목받은 분야였다. 각국에서 16개 관련기업이 ‘차세대 주자는 나야 나!’를 외치고 있었다. 산업은 급성장하고 있지만 벌써부터 레드오션이라는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웬만한 기술은 순식간에 따라잡힌다는 것이 지금의 산업 생태계인 것이다.

IoT는 자동차 헬스 웨어러블 3대 방면으로 2단계 진화를 펼치는 중이었다. 심지어 양말과 속옷업체들까지 전자전에 뛰어들었다. IoT의 폭발적 확장은 어떤 업체가 경쟁자로 치고 나올지 모르는 상황을 말하는 것 같았다. 자동차가 전자산업화하듯이 거의 모든 물건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면서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고 있다. CES의 대표주자인 TV는 삼성과 LG가 극한의 해상도를 다투면서 스마트 기능에서도 치열하게 표준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도요타는 수소차 특허 수천 건을 일방적으로 공개한다고 선언했고 삼성도 IoT 관련 생태계를 완전히 개방하겠다고 선언했다. 개방을 통해 ‘협력 진영’을 크게 편성할수록 다가오는 전쟁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IoT는 갈수록 연성화하고 있지만 산업들은 더욱 치열했다.기계가 인간 감성을 닮도록 하는 과정이 IoT

문제는 IoT가 새로운 문명으로까지 부상하고 있는 데 반해 사회적 관습이나 법률, 정부 규제는 여전히 20세기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자율주행 무인차가 도로교통, 보험, 금융 등에서 기존의 규칙을 매우 낯설어하고 있듯이 여러 산업분야 중 가장 신속하게 IoT화하고 있는 헬스케어 분야는 기존의 법률적·사회적 환경과 너무도 이질적인 것이 문제다. 규제가 많은 한국에서는 더욱 그럴 것으로 우려됐다. 한국의 규제당국은 스마트폰의 헬스케어 기능을 아예 장난감처럼 격하시키고 있다.

전시장에는 한국의 관련 공무원들도 다녀갔다고 한다. IoT 산업의 전개는 관련업계는 물론이고 언론과 정부, 그리고 사회가 서둘러 준비해야 할 과제들도 동시에 던져주고 있었다. 산업이 규제에 앞서는 것은 일반법칙이라고 하겠지만 정부의 낡은 규제가 달려가는 산업의 뒷다리를 잡는 일이 있어서는 곤란하다. CES에서는 모두가 “웨어러블!”을 외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아직 원격지 진료조차 불가능한 것이 관련 규제법의 현실이다.

라스베이거스=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