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땀과 헌신'으로 일군 한국 60년

■ 근면성·'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한강의 기적 이뤘다

영화 ‘국제시장’
‘한강의 기적’은 대한민국 경제 번영을 일컫는 상징어다. 대한민국은 일제 압박과 6·25전쟁을 겪은, 거의 폐허의 땅에서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는 세계 13위, 수출 규모로는 세계 7위 국가다. ‘한강의 기적’은 개발도상국 경제성장의 롤모델이 된 지 오래다. 기업가 정신, 경제적 자유, 개방, 창의, 리더십 등은 비약적 경제성장 스토리의 원동력이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 우리 민족 고유의 근면성도 대한민국 경제 번영의 주춧돌 역할을 했다.

‘가난했던 나라’가 성장 롤모델로

대한민국은 1960년까지만 해도 지구촌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1960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79달러로 가나, 수단과 그 수치가 엇비슷했다. 당시 세계은행은 (한국보다는) 필리핀, 버마(현 미얀마)의 앞날을 더 장밋빛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상은 세계 8위 무역국가, 7위 수출국가, 13위 국내총생산(GDP) 국가가 됐다. 선진국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된 지는 오래다(1996년). 대한민국은 필리핀, 미얀마와는 국제적 경제 위상이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국제무대의 중심에 우뚝 섰다.한국 경제 60년사는 위기와 도전의 역사다.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산업화의 첫 걸음이었다. 당시만 해도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를 밑돌았고, 실업률은 25%로 치솟았다. 일할 수 있고, 일하려는 의지가 있는 네 명 중 한 명이 일자리가 없어 거리를 떠돌았다. 생산량은 멕시코의 6분의 1 수준이었다. 미국의 외교전문 잡지인 포린 어페어는 “한국의 경제적 기적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런 나라가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를 누비는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GDP는 1조4500억달러(2014 IMF 기준)로 멕시코(1조3000억달러)를 제치고 세계 13위로 올라섰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올해 3만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수치로 입증된 ‘기적의 지표들’

1964년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55달러(당시 환율로 약 9만원)로, 아시아의 필리핀 인도네시아는 물론 아프리카 최빈국인 가나나 가봉에도 못 미쳤다. 하지만 50년이 흐른 지난해 한국의 GNI는 2만6205달러(약 2900만원)였다. 한마디로 괄목상대의 눈부신 도약이다. 수출은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1964년엔 1억달러를 수출하는 데 307일이 걸렸다. 현재는 세 시간 남짓이면 1억달러어치를 해외에 내다판다.삶의 질도 비약적으로 좋아졌다. 1966년 0.7대에 불과했던 인구 1000명당 자동차 등록 대수는 300.3대(2013년 기준)로 폭증했다. 도시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은 통계 집계를 시작한 1963년 5990원에서 2012년엔 502만원으로 50년 만에 100배 가까이 늘었다.

유선전화 가입자는 50년 전 9만5000명에서 현재는 1800만명을 넘어섰다. 같은 기간 휴대폰(카폰 포함) 사용자는 80명에서 7100여명(복수 사용자 포함)으로 급증했다. 금융시장도 천문학적으로 성장했다.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1956년 불과 4억원 규모에서 1977년 처음 1조원을 돌파한 뒤 1993년엔 100조원까지 늘어났다. 현재 시가총액은 1300조원을 오르내린다. 1970년 61.9세였던 한국인 평균 기대수명도 2012년에는 80세를 훌쩍 넘어섰다. 1964년 1조원을 밑돌던 GDP는 50년 만에 1500조원으로 급증했다.이제 필리핀 인도네시아 가봉에 대한민국은 ‘경제성장의 롤모델’이다. 이들 국가 공무원과 기업인은 ‘한강의 기적’을 배우기 위해 대한민국 발전사를 연구한다.

기업가 정신·근면이 초석

‘한강의 기적’은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정부는 수출주도형 경제발전이라는 성장의 큰 틀을 짰고, 기업가는 혁신·도전·창의라는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했다. 물론 눈부신 경제성장의 씨앗은 근로자들이 흘린 땀이다. 한국은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1980~1990년대 대외개방과 경쟁촉진, 1990년대 이후 구조조정과 정보기술(IT), 벤처기업 육성 등을 통해 가전 조선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산업 포트폴리오를 갖추며 세계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물론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역사에는 고비도 많았다. 외환위기라는 아픔도 겪었고, 개방의 길목에서는 내부적으로 갈등도 많았다. 하지만 아픔과 갈등을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지혜를 발휘했다. 개방으로 경쟁무대를 세계로 넓혔고, 경쟁력 또한 그만큼 높아졌다. 지구촌 곳곳에서 불고 있는 한류는 ‘개방하면 속국이 된다’는 일부의 주장이 얼마나 짧은 생각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한민국은 ‘개방의 역설’을 실증적으로 입증한 대표적 국가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 가상대담 - 애덤 스미스에게 한국의 길을 묻다


"시장은 설득·호혜의 장소…이기심도 규제하지 말아야 "

대한민국 경제가 나아갈 길은 무엇인가. 요즘 부쩍 이런 질문이 많이 나온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반영한다. 대외적으론 ‘거대 경제’ 중국에 치이고, ‘막강 경제’ 일본에 밀린다. 그리스 등 신흥국 경제가 휘청거리고 국제 기름값도 급락 중이다. 내부적으로 한국은 반기업 정서와 경제 민주화 등으로 탄력을 잃어가고 있다.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 교수와 가상대담을 가졌다.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의 저자인 그에게 길을 물었다. 그는 "경제가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는 부(富)와 부자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다. 이런 인식이 사회질서와 번영에 영향을 주나.

“부·지위·명예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도덕감정론에 썼듯이, 우리는 타인과 함께 슬퍼하는 것보다 타인과 함께 기뻐하는 편을 선호한다. 부는 인간을 기쁘게 하고, 빈곤은 슬프게 한다. 지위와 명예도 마찬가지다. 개인들의 이런 행동은 한정된 부와 지위를 놓고 경쟁하게 된다. 이런 경쟁은 궁극적으로 물질적 풍요를 낳는다. 이것은 사회질서와 번영의 기초다. 한국 사람들이 부와 부자에 대해 너무 부정적이지 않기를 바란다.”

▷부·지위·명예를 가령 불법적으로, 아무렇게나 만들거나 쌓아도 된다는 것인가.

“나를 물질만능주의 경제학자로 잘못 아는 사람들이 많다. 도덕감정론에서 강조했던 점은 동감이다. 인간이 이기적이긴 하지만 다른 천성도 있다. 그것이 바로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다. 동감은 타인의 감정과 행위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마음의 작용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우리는 자기 마음 속에 있는 ‘공평한 관찰자’가 싫어하는 감정과 행위를 삼간다. 평판이 나빠지면 칭찬을 못 받고, 거래에서 배척당한다. ‘지혜로운 자’는 자기규제의 작동으로 공평한 관찰자들이 인정하도록 행동한다. ‘연약한 자’들은 자기기만으로 무언가 해로운 일을 저지른다.”

▷자기 기만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부정적 인식이 팽배한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에겐 치명적 약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약점이 활개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정의의 규칙이 바로 그것이다. 공평한 관찰자나 지혜로운 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우리는 정의의 규칙으로 처벌한다. 정의는 타인의 생명·재산·명예에 상처를 입히는 행위를 하지 않도록 지시한다. 우리는 행위의 기준으로 이런 정의의 규칙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 의무감이 제어하는 것은 욕망, 기쁨, 슬픔, 그리고 이기심이 포함된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엄밀하고 보편적인 규칙, 즉 법으로 만든다.”

▷도덕감정론대로라면 착하게만 살아야 한다. 그러면 경제가 나아지나.

“나는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이 생활 속에서 필요 이상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추구한다고 했다. 야심과 야심의 동기인 허영이 그것이다.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이런 연약함이다. 우리는 먹고 살 만한 최저 수준의 부를 가지고 있어도 더욱 많은 부를 획득해 행복한 인생을 보내려 한다. 이런 천성이 근면성을 만들고 일을 더 하게 만든다. 다만 페어플레이 정신은 반드시 필요하다. 바로 올바른 경쟁이다. ‘재산으로 가는 길’을 걷더라도 정의를 따라야 한다.”

▷한국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국부론은 핀 공장에 적용된 분업 이야기로 시작된다. 핀 공장 이야기는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일반 원리다. 분업은 인간의 본성인 교환성향 때문에 일어난다. 교환이 제대로 되기만 하면 분업은 자동적으로 나타난다. 정부가 이런 교환을 규제한다면 분업은 줄어든다. 각종 시장규제가 그런 것이다. 교환을 하는 장소가 바로 시장이다. 한국 정부는 대형마트 규제, 동네상권 보호규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규제 같은 시장 규제를 많이 한다. 나라 분위기가 시장규제 천지라면 생산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시장 경제에 대한 반감이 없어야 경제가 잘될 텐데.

“시장은 설득과 호혜의 장소다. 그 반대로는 절대로 시장이 돌아가지 않는다. 인간이 타인과 물건을 교환하는 것은 자기생존과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타인의 도움이 없으면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국부론에서 ‘우리가 매일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과 양조장,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한 그들의 고려 때문이다’고 했다. 시장 교환은 동감, 설득, 자애심이 작동하는 호혜적 행위다. 본디 시장은 호혜적이다. 이런 가운데 경쟁이 생긴다. 더 싸게 더 좋은 것을 제공하게 된다. 경쟁은 호혜의 질을 높이고, 양적으로도 증가시킨다. 시장을 미워하지 않는 한국이 됐으면 한다. ‘보이지 않는 손’에 놔두면 잘된다.”

▷한국 정서는 기업의 자본 축적보다 사회적 분배나 이익의 사회환원에 더 쏠려 있다.

“국부론에서 나는 풍요로움을 증진시키는 방법으로 분업에 이어 자본 축적을 강조했다. 자본은 비생산적인 노동보다 생산적인 노동에 사용될수록 더 많이 축적될 수 있다. 나는 개인의 소비가 적을수록, 정부의 지출이 적을수록 자본 축적이 빠르게 진행된다고 본다. 반대로 개인의 소비가 심하고, 정부 낭비가 많을수록 자본 축적은 지체된다. 정부가 커져 세금을 많이 걷거나, 특정 집단에 이익을 주는 규제로 부패하거나, 보호무역을 하거나, 전쟁으로 많은 재정을 소비하는 것이 대표적인 낭비다. 정부는 자기가 모든 사람을 이익으로 인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서 망상이 생긴다. 정부는 지식과 지혜가 충분할 수 없다. 노동과 자본의 사용방법은 소유자 개인에게 맡겨야 한다.”

▷한국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경제성장은 부가 증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부자와 가난한 이들 사이에 관계가 생겨나는 것을 의미한다. 부자가 자신의 부를 혼자서만 소비한다면, 또 부를 집안에 처박아 둔다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과의 연결고리는 없다. 부자가 더 큰 부를 이룩하려면 자신의 재산을 농업, 제조업, 상업에 투자한다. 이로 인해 경제가 성장하고 노동 수요가 증가하고 임금이 지급된다. 성장을 통해 더 높은 임금이 주어진다. 기본적으로 시장과 기업에 맡겨두는 것이 정도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 몽골·미얀마·캄보디아서 새마을운동의 부활

새마을운동은 ‘근면·자조·협동’이 근간 정신이다. 생활태도 혁신, 환경개선, 소득증대를 통해 낙후된 농촌을 근대화시킨다는 취지로 1971년부터 전국적으로 전개된 정부 주도의 지역사회 개발운동이다.

1960년대 경제개발이 도시 중심의 근대화 전략이었다면, 1970년대 초 새마을운동은 낙후돼 있던 농촌 중심의 근대화전략이었다.

60~70년대 수도권의 발전을 상징하는 단어가 ‘한강의 기적’이라면, 농촌지역의 발전을 상징하는 단어는 ‘새마을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새마을운동은 이제 ‘국가 브랜드’로서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 1991년 몽골을 시작으로 새마을운동을 배우기 위해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한국을 찾았다. 현재 미얀마 캄보디아 네팔 등 아시아 6개국, 콩고민주공화국 우간다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6개국 등 12개 나라가 한국형 농촌발전모델을 접목하고 있다.유엔은 새마을운동을 바탕으로 한 ‘새천년마을계획’이라는 아프리카 빈곤퇴치 프로그램을 추진할 만큼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아버지 세대’의 삶을 새마을운동을 통해 되짚어 보는 것은 어떨까.

장두원 한국경제신문 인턴 (연세대 국어국문 2년) seigichang@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