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운명의 날 1월25일…그리스, 유로존 탈퇴하나

총선 직전 '그렉시트' 우려 확산
'G-유로' 현실적 대안으로 부상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오는 25일 그리스 총선을 앞두고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가 집권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동안 잠복돼 왔던 ‘그렉시트(Grexit:Greece+exit)’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미 10년물 그리스 국채수익률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내 경제 취약국인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의 디폴트, 즉 국가부도 판단 수준인 연 7%를 넘어섰다.

그리스 총선을 앞두고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당 지지율이 알렉시스 치프라스 대표가 이끄는 시리자가 1위를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선에 다가갈수록 시리자와 안토니스 사마리스 총리가 이끄는 신민당 간 정당 지지율이 좁혀지고 있지만, 시리자의 지지기반이 워낙 탄탄해 쉽게 뒤집히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3년 전 유럽재정위기 때와 달리 이번에 그렉시트와 같은 회원국 탈퇴 문제가 곧바로 제기되는 것은 두 가지 요인 때문이다. 하나는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투표를 계기로 유로존 내에서 분리 독립운동이 확산돼 왔다. 다른 하나는 유럽위기 극복과정에서 정책수단이 거의 소진돼 회원국 탈퇴 이외에 별다른 방안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총선 이후 그렉시트 방안이 확정되면 유럽 통합과 유로화 가치, 그리고 국제 금융시장에 파장이 예상된다. 그중에서 유럽 통합에는 남은 PIGS의 유로존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회원국 내 분리독립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배리 아이켄그린 미국 UC버클리대 교수는 그 충격이 리먼 사태의 제곱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유로화 가치도 영국 경제전문지인 이코노미스트가 올해 안에 ‘1유로=1달러’를 전망할 정도로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4분기를 계기로 디플레이션(성장과 물가가 동시에 떨어지는 현상)에 빠진 유로존 경기도 더 악화돼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처럼 ‘잃어버린 10년’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잊을 만하면 그렉시트와 같은 회원국 탈퇴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는 유럽 통합에 대해 유럽 국민이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럽 통합에 따라 얼마나 혜택을 받는가’를 조사한 결과 만족도가 회원국 국민 평균 50%대에 그치고 있다. 그리스와 같은 취약국 국민일수록 만족도가 더 떨어졌다.

유로존은 가입 조건과 절차에 대해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으나 회원국 탈퇴에 대해서는 관련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그렉시트의 제도적 문제는 EU의 회원국 탈퇴 조건과 절차를 원용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EU 조약상 회원국 자격을 강제로 박탈할 수 없으며, 다만 회원국이 자발적 판단에 따라 탈퇴할 수 있다.이 때문에 그리스 총선 이후 시리자가 집권할 경우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두 가지다. 유로존에서 탈퇴하는 ‘그렉시트’와 그대로 잔존하는 ‘G-유로(Greece+Euro)’다. 특히 ‘G-유로’는 외형상으로 그리스를 유로존에 잔존시키면서 독자적인 경제 운용권을 주는 방식이다. 이때 그리스는 수렴조건에 구속되지 않으면서 위기를 풀어갈 수 있고, 독일은 구제금융 부담을 덜 수 있는 ‘윈-윈 방식’으로 더 현실적이다.

작년 5월에 치러졌던 유럽의회 선거에서 좌파 세력이 약진한 이후 취약국은 ‘G-유로’ 방식을 고집해 유럽 통합을 깨지 않으면서 내부적인 문제를 이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의 치프라스 대표도 이 방안에 대해 동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렉시트 우려가 높아지는 것은 구제금융 수용조건인 긴축을 이행하지 않을 가능성 때문이다. EU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취약국일수록 재정긴축 이행에 따른 국내총생산(GDP)에 미치는 타격이 심하게 나타났다. 그리스 국민도 그렉시트에 반대하고 있으나 긴축이행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경제 취약국의 사정을 감안하면 그리스 총선을 계기로 유로존의 기본골격이 보완될 가능성이 크다. 기본적으로 유로존의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통화 통합과 재정 통합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이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유럽중앙은행과 유럽재정안정기구, 유로화와 유로본드 간 ‘이원적 매트릭스’ 체제를 갖춰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과도기에는 핵심국과 취약국 간의 ‘이원적 운영체계(two way band system)’가 공식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 체계는 유로화 도입 전에 운영됐던 ‘유럽조정메커니즘(ERM)’과 동일한 원리로, 독일과 같은 핵심국은 수렴조건을 보다 엄격(narrow band)하게 관리하고 그리스와 같은 취약국은 느슨(broad band)하게 운영하는 방식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