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테일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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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흔히 투자는 확률게임이라고 한다. 괜한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승률이 높은 쪽에 계속 베팅하다 보면 장기적으로 수익이 쌓인다는 얘기다. 이런 주장은 대체로 정규분포를 근거로 한다. 확률상 시장은 정규분포상 평균을 중심으로 일정 범위(표준편차) 내에서 주로 움직이니 이를 감안해 투자하라는 것이다.
이 얘기대로면 잘못된 투자로 돈 잃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완전히 반대다. 개인투자자는 물론 내로라하는 헤지펀드, 심지어 리먼브러더스 같은 대형 투자은행마저 뻥뻥 나가떨어지는 일이 흔하다. 왜 그럴까. 개중엔 무리한 투자도 있겠지만 답은 테일 리스크(tail risk)에 있다. 정규분포 곡선상 양쪽 꼬리 부분이 발생할 확률은 대단히 낮다. 하지만 희박한 확률이라도 언젠가는 한 번씩 일어나게 마련이다. 블랙스완도 결국 테일 리스크의 일종이다. 문제는 그런 일이 터졌을 때 리스크가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단적인 예가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다. 당시 부실 모기지 문제가 CDO라는 구조화상품을 통해 리먼브러더스, AIG와 같은 대형 금융사를 휘청이게 만들고 세계 금융시장까지 뒤흔들 가능성은 단순 확률상 매우 낮았다고 한다. 하지만 상호 긴밀하게 연결된 금융시장에서 비이성적 혼란이 생기면서 여러 테일 리스크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 그 파장이 삼각파도처럼 증폭된 사례다.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파산, 2001년 9·11테러 등도 비슷하다. 테일 리스크가 무서운 건 확률이 아주 낮은 리스크에는 충분히 대비하지 않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성공한 투자자일수록 더 그렇다. 선물옵션 시장에서 한때 큰손으로 불리며 유명세를 타던 고수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도 비슷한 연유에서다. 영원한 수익을 안겨줄 것 같던 시스템매매가 맥스드로다운(최대낙폭)에 걸려 깡통계좌로 전락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누리엘 루비니나 마크 파버 같은 닥터둠들이 먹고 사는 것도 테일 리스크 덕분이다.
스위스 중앙은행의 환율하한선 폐기로 글로벌 시장이 또 한 차례 출렁거렸다. 일부 헤지펀드가 파산하고 몇몇 대형 투자은행이 천문학적 손실을 입었다고 한다. 또 다른 테일 리스크다.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 모르지만 조심 또 조심할 일이다. 저금리 여세를 몰아 국내 ELS 발행잔액이 70조원을 넘어섰다니 걱정부터 앞선다. 테일 리스크에 대한 최선의 헤지는 성실하게 돈 벌어 차곡차곡 모으는 게 아닐까 싶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