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복지증세 앞서 '세금복지' 수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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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정산 계기로 불거진 增稅 논란
감당할 능력 없는 복지정책 고치고
투자·경쟁 가로막는 세제도 손봐야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

연말정산은 확정된 연간 소득을 바탕으로 소득세법에 따라 납부할 총액을 계산해 더 낸 세금은 돌려받고 덜 낸 세금은 더 내는 방식으로 문자 그대로 정산(精算)하는 것이다. ‘13월의 월급’이나 ‘13월의 세금폭탄’이란 용어는 근시안적 납세자들이 느끼는 기분이 그렇다는 점을 표현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애초 성립하지 않는 말이다.
원천징수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개인의 연간 소득 추세를 고려해 소득의 일부를 정부가 연중 떼어가는 것이다. 개인마다 사정이 다르고 도중에 변화도 있을 수 있으므로 정부의 시뮬레이션 결과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은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다.
연말정산을 계기로 오히려 중점적으로 논의돼야 할 사항은 세 가지다. 첫째, 세율을 바꾸지 않았으므로 증세를 증세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정부의 정직하지 못한 태도다. 세금과 관련된 조건이 일정할 때 더 많은 세금을 정부가 거둬가면 그것은 누가 뭐래도 증세다. 정부는 솔직히 이를 인정해야 한다. 소비 진작을 위해 원천징수를 적게 하고 연말정산 때 그동안 적게 뗀 세금을 가져가겠다는 정책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 연말에 빤히 더 낼 세금임을 알면서도 당장 가처분 소득이 증가해서 소비를 늘리는 사람들의 근시안적 행동을 감안하더라도 총소비를 진작시킬 수 있는 수준은 되지 못한다.
둘째, 현 정부의 증세 이유는 복지재정 충당이다. 정부는 이런저런 기준으로 새로운 복지 대상자를 발굴해 늘리고 있다. 반면에 비과세 감면 축소, 지하경제 양성화, 정부지출 조정 등을 통해 마련하겠다는 복지재정 계획은 모두 실패했다. 지금은 감당할 능력이 없는 복지재정 확보를 위한 증세를 논할 것이 아니라 복지정책을 고쳐야 할 때다.
셋째, 이른바 분배정의의 이름 아래 정당화되고 있는 누진세다. 누진세는 간접세가 저소득층에 비례적으로 과도한 부담을 주는 경향에 대한 보상이라는 점 외에는 정당성이 없다. 이를 넘어선 누진세의 문제는 우선 개인들의 생산 활동에 따라 결정되는 세전(稅前)의 상대적 보수체계를 세후에 변화시킨다는 점이다. 소수인 고소득층에 속하는 사람과 다수인 저소득층에 속하는 사람이 제공하는 동일한 서비스에 대한 세후 순보수를 고소득층인 소수에게 불리하게 낮추기 때문이다. 이는 정의의 규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당연히 자본축적을 통해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고소득층의 일할 유인(誘因)을 떨어뜨리고 그들의 에너지를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분산시킨다. 그러나 지금 세계 각국에서는 이런 정의의 감각은 무뎌지고, 어떤 논리적 타당성도 가지지 않는, 단지 고소득층에 대한 시기와 질투심에 따른 과중한 누진세가 보편타당한 원리로 일반화됐다. 부자 증세로 중산층을 살리겠다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최근 발표도 그런 무딘 감각을 표현한 것이다.
누진세는 또 단기적으로 큰돈을 벌 수 있는 투자를 좌절시킴으로써 신규 사업자의 진입을 방해하고 기존 사업자를 보호해 경제성장을 방해한다. 즉 누진세는 성공할 때 받을 수 있는 보상이 손실의 위험을 초과할 수 있는 위험 자본을 차별적으로 대우함으로써 모험적 투자를 가로막는다.
국가의 책무는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국방과 치안 등의 영역을 제외하면 증세는 개인의 자유를 축소할 뿐이다. 또 이런저런 명목의 세금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구성원 간의 수탈구조로 변해 간다. 평화도 깨진다. 지금 한국이 그런 모습이다. 연말정산 논란을 계기로 세금에 대한 쓸모 있는 토론이 있어야 한다.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