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먼저 챙겨주면 내가 편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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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집 '나보다 당신이…' 출간한 주경 스님“제가 다섯 여자와 살아요. 사무실에 셋, 공양간에 둘이 있죠. 다들 임자가 있는 ‘남의 여자’들인데 이분들에게 잘 보여야 편합니다.”
독신출가승인 주경 스님(충남 서산 부석사 주지·불교신문 주간·사진)의 ‘여자’ 이야기에 한바탕 웃음이 좌중에 터졌다. 에세이집 《나보다 당신이 먼저입니다》(마음의숲)의 출간을 기념해 27일 서울 견지동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였다.“다른 신도들과 잘 어울리고 주지에게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던 진 보살이라는 여성 신도가 저한테 그랬어요. ‘스님은 여자를 너무 모르세요’라고요.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제가 여자의 마음을 너무 모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성과 신도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잘 맞춰보려고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죠. 요즘은 신도들한테 종종 이런 말을 들어요. ‘우리 스님은 결혼도 안 해봤는데 어쩜 그렇게 여자들 속을 잘 아신대요?’라고요.”
비결이 뭐냐고 했더니 “유심히 살펴보고 귀 기울여 듣는 것”이라고 했다. 그게 바로 소통이란다. 내친김에 한마디 더. “남자는 50대 이후엔 밥하는 걸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아내가 자유로워지고, 결국은 자신도 자유로워진다는 얘기다. 주경 스님은 이 책에서 “남들을 먼저 챙겨주면 내가 편안하다”며 “남들을 배려하면 내가 더 자유로워지고 몇 배로 더 큰 기쁨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주지를 하다 보면 새 옷(승복)을 얻어 입을 때가 더러 있는데 가장 좋은 옷은 주로 다른 스님들에게 주게 돼요. 평소 안 입던 것이나 헌 옷을 남한테 주는 세속과는 다르죠. 그런데 좋은 옷을 남 주고 나면 서로 편해요. 내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서로를 불편하게 하거든요.”주경 스님은 또 “살다 보면 자주 ‘욱’ 하게 되는데 거기까지는 괜찮지만 그 감정이 밖으로 삐져나오면 자신에게 굴레가 된다”며 마음을 천천히 쓰고, 소처럼 느리게 걸어보자고 제안한다.
주경 스님은 “최근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갑질 현상, 땅콩회항 사건 등은 모두 나만 생각하고 타인의 아픔, 슬픔 등을 생각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라며 “나보다 당신이 먼저라는 생각이 범국민적 캠페인으로 전개돼 사람들의 온몸과 마음에 습관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국대를 졸업하고 1986년 수덕사로 출가한 주경 스님은 올해로 16년째 부석사 주지를 맡고 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