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풀다 만 증손회사 지분 규제

임도원 증권부 기자 van7691@hankyung.com
“이런 식의 규제 완화가 무슨 실효성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신석훈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장)

정부가 지주회사의 증손회사 지분율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지만 재계에선 냉담한 반응이다. ‘수박 겉핥기식’ 규제 개혁이란 판단에서다.정부는 지난해 말 발표한 ‘규제 기요틴 과제 추진방안’에서 증손회사 지분율 요건을 50%로 완화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종전까지만 해도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증손회사를 두려면 지분을 100% 보유해야 했다. 이른바 문어발 확장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개선안에서는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외국인, 중소기업 또는 사회적 기업과 함께 증손회사에 공동 출자할 경우에 한해 지분 50%를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외국인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해 3월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으로 지분율 완화가 적용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중소기업 및 사회적 기업과의 공동 출자에만 문호를 조금 더 개방한 것이다.

공동 출자 요건도 까다롭다. 공정거래법상 공동 출자한 회사들은 피투자회사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당한 지분을 소유해야 한다. 지분 양도 역시 제한한다. 한 대형 법무법인의 공정거래법 전문 변호사는 “중소기업과 공동 출자할 정도의 사업이라면 대부분 대기업인 지주회사들이 자체 투자할 수 있는 사업일 것”이라며 “지주회사가 굳이 까다로운 제약을 받아가면서 중소기업과 공동 출자법인을 세울지 의문”이라고 했다. 신 팀장은 “기업의 출자는 상황에 따라 유연성 있게 이뤄져야 하는데 이런 식이라면 규제를 완화한다는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상황이 이런데도 야당에선 ‘대기업 특혜 법안’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달 7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었으나 야당 반대로 증손회사 규제를 완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논의하지도 못했다. 2월 임시국회에서도 제대로 논의될지 미지수다.

정부는 ‘규제 기요틴’에 대해 비효율적이거나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 규제를 단기간에 대규모로 개선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벌써부터 규제 기요틴이 이름만 요란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임도원 증권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