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ECB, 치킨게임 돌입…"구제금융 연장 안해", "더 이상 협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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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프라스 "가교 프로그램 추진·긴축 중단"그리스와 유럽중앙은행(ECB)의 신경전이 ‘치킨게임(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ECB가 그리스 국채를 담보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한 가운데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사진)는 기존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전문가들은 양측의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어 오는 12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가 그리스의 운명을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12일 EU 정상회담이 그리스 운명 분수령"
○“보름 내 가교 프로그램 합의하겠다”치프라스 총리는 8일(현지시간) 취임 후 첫 의회 연설에서 “그리스 정부는 오는 28일 종료되는 구제금융 프로그램의 연장을 요청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다. 그는 또 “(부채 만기가 한꺼번에 몰리는) 오는 6월까지 추가 긴축 없이 유동성을 지원받을 수 있는 가교 프로그램에 대해 보름 안에 합의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기존 구제금융 프로그램의 연장은 실수를 이어가는 것”이라며 “2차 세계대전에 대한 독일의 배상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선거 때 제시한 긴축정책 반대 공약을 실천에 옮기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그리스 정부는 현행 월 580유로(약 72만원)인 근로자 최저임금을 내년까지 751유로로 올릴 방침이다. 개인 소득세 면세 기준을 부활시키고 정부의 긴축정책 이행으로 중단한 국영방송을 재개할 예정이다. 또 공공 부문의 민영화 추진을 중단키로 했다.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은 이날 “그리스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서 강제로 나가게 되면 유로존은 분열과 해체의 위험에 맞닥뜨려 결국 붕괴될 것”이라며 유로존을 향한 압박성 발언까지 했다.
○EU 정상회담이 전환점그리스는 오는 28일 2400억유로의 구제금융 만기를 맞는다. ECB와 EU, 국제통화기금(IMF)으로 구성된 그리스 채권단은 치프라스 정부가 긴축 계획을 이행하고 기존 구제금융 연장을 요청하길 바라고 있다. 구제금융이 연장되지 않으면 그리스에는 당장 자금 공급이 끊긴다.
그리스가 기존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 채권단은 그리스가 ‘가교 프로그램’으로 요청한 40억~50억유로 규모의 단기 자금 지원을 거부했다. 그리스의 채무 재협상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앞서 지난 4일 ECB는 더 이상 투기등급으로 떨어진 그리스 국채를 담보로 그리스 은행들에 대출을 해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ECB의 저금리 대출에 크게 의존했던 그리스 은행들로서는 유동성 확보에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국채를 담보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ECB의 강한 조치에도 그리스가 굴하지 않으면서 그리스와 유로존의 충돌이 격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이달 들어 잇따라 진행된 그리스와 유로존 주요 국가들의 부채 재협상 논의가 이렇다 할 결론으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11일 유로존 재무장관회의와 12일 EU 정상회의에서 새로운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제시될 것으로 내다봤다.조지 사라벨로스 도이치뱅크 전략가는 “현재로서는 엄격한 조건이 붙은 새로운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제시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해 니콜라스 에코노미데스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리스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며 “채권단의 압력에 굴복하면 치프라스 정부의 좌파 성향이 퇴색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가교 프로그램
그리스가 기존 구제금융 프로그램 대신 채권단과 새로운 조건의 협상을 맺을 때까지 버틸 수 있도록 채권단으로부터 필요한 자금을 단기로 지원받는 프로그램이다. 그리스 새 정부의 ‘가교 프로그램’ 요구에 유럽중앙은행(ECB)은 거부 의사를 밝혔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