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전영현 사장 "어려워서 못만든다?…만들어내는 게 진짜 1등"

CEO 오피스 - 전영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사장

경쟁사 출신으로 최고위직 오른 집념의 '반도체 맨'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지난해 12월 삼성전자 사장단 인사에서 전영현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 메모리사업부장(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자 ‘의외’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전 사장은 LG반도체(1999년 옛 현대전자, 현재 SK하이닉스에 흡수합병)에서 7년간 근무하다 삼성전자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열린 조직’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LG 출신이 사장에 오른 건 이례적이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내부 사정에 밝은 사람들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인사라고 입을 모았다.

메모리사업부를 맡고 있던 김기남 사장이 지난해 중순 반도체총괄 겸 시스템LSI 사업부장으로 자리를 옮기자 “메모리 사업을 이끌 적임자는 전영현밖에 없다”는 소문이 돌았다. 회사 측 평가도 다르지 않았기에 직원들 입소문처럼 그대로 인사가 발표된 것이다.삼성이 스카우트한 LG 엔지니어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전 사장은 KAIST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에서 잠깐 연구원 생활을 하다 1991년 LG반도체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입사하자마자 탁월한 설계 능력을 바탕으로 당시 LG반도체가 강력하게 추진하던 D램 개발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특히 1990년대 중반 LG반도체가 미국 램버스의 ‘고속 D램’ 특허를 활용해 제품을 개발할 때 실무 팀장 역할을 맡았다.

당시 LG반도체의 최고경영자(CEO)는 구본준 사장(현 LG전자 부회장)이었다. 당시 LG반도체에서 전 사장과 함께 일했던 한 직원은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하고 인품이 출중했다”며 “당시 구 사장이 특별히 아끼던 인재”라고 전했다.

1999년 정부 주도의 ‘반도체 빅딜’로 LG반도체가 현대그룹으로 넘어가는 일만 없었다면 전 사장은 지금쯤 LG그룹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빅딜로 업계가 혼란스러울 때 삼성이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 전 사장은 2000년 삼성전자 D램 개발팀으로 자리를 옮겨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허세는 싫다, 숫자로 말하라”그의 기술력과 추진력은 삼성전자에 와서 더욱 돋보였다. 1년여 만에 메모리사업부에서 최고 요직 중 하나인 D램 개발팀장을 맡았다. 개발 목표를 세우면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난관에 부딪혀도 좌절하지 않았다. 좌절하는 순간 목표는 멀어진다고 판단해서다. D램 개발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포기해서도 안 되고 지쳐서도 안 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군더더기 없는 업무 방식도 사내에서 화제가 되곤 했다. 전 사장은 보고 자료가 화려한 파워포인트 형식으로 돼 있으면 “본질이 아닌 것에 뭐하러 신경 쓰느냐”며 되돌려보냈다. 요점만 분명하면 굳이 형식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개발이나 제품 출고 일정 등과 관련한 ‘숫자’에 대해서는 철저했다. 보고에 숫자가 잘못돼 있거나 실무자에게 물었을 때 정확한 데이터가 바로바로 나오지 않으면 불호령을 내렸다는 후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정통 엔지니어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어려운 것에 도전해라”2000년대 중반의 일이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에선 “반도체 설계를 간단하게 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D램의 경우 회로 선폭이 80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 수준까지 미세화가 진행되면서 양산 과정에서 각종 어려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때문에 삼성전자 내부에선 “설계를 좀 더 간단하게 해서 생산 효율을 높이자”는 의견이 많았다. 회사 수뇌부 중 상당수가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한다. 실제로 제조를 염두에 둔 디자인을 설계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전무였던 전 사장은 적극 반대했다. “업체 간 기술 경쟁이 치열한 와중에 제조를 쉽게 하겠다고 설계의 기본을 포기해선 안 된다”며 “어려워도 만들어내는 게 진짜 1등”이라는 논리였다. 전 사장이 반대 목소리를 높이면서 제조나 기획 쪽 고위 임원들과도 마찰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전 사장은 끝까지 자기 의견을 밀어붙였고, 10년이 지난 지금 전 사장의 주장이 결국 옳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80나노도 어렵다던 삼성이 지금은 20나노 D램을 대량 생산하고 있어서다. 경쟁사와의 기술 격차를 1년 이상으로 벌리면서 압도적인 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삼성의 설계 역량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반도체는 미래를 창조하는 보석”

전 사장은 2009년까지 줄곧 D램 개발실에서 근무하다가 2010년 낸드플래시를 담당하는 플래시개발실장에 임명됐다. 그리고 2년 뒤엔 갑자기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때부터 삼성 내부에선 “차기 메모리사업부장은 전영현”이라는 말이 돌았다.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팀은 삼성그룹에서 ‘사장으로 가는 관문’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전동수 삼성SDS 사장, 조남성 삼성SDI 사장 등이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팀장 출신이다. 삼성 관계자는 “최고위직에 오르려면 기술적 지식은 물론 마케팅 감각을 두루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마케팅 역량을 갖춘 엔지니어’로서 그는 회사 영업 역량을 한껏 끌어올렸다. 한번은 고객사가 제품을 주문하자 절전 기능을 더한 제품을 소개하며 “이걸 쓰면 가격은 좀 비싸지만 에너지 소모를 줄여 훨씬 큰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설득해 계약까지 이끌어내기도 했다. 해외 생활 경험이 많지 않지만 전문성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해외 바이어들과 통역 없이 영어로 대화한다.

일 욕심이 워낙 많은 데다 전문 지식과 실무 경험이 풍부하다 보니 같이 근무하는 임직원들은 힘들 때가 많다. 삼성전자가 20년 넘게 D램 시장 1위를 유지하고 있는데도 “마치 업계 2위처럼 기술 개발과 수율 향상에 매진한다”는 게 사업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렇게 오래 1등을 지켰는데, 내가 있을 때 무너지면 안 된다”는 위기감으로 스스로에게 가혹할 정도로 채찍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 사장은 반도체 사업을 단순한 ‘부품 판매’로 여기지 않는다. 평소 반도체를 “인류의 발전에 공헌하고 미래를 창조하는 보석”이라고 강조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의미 부여를 통해 탄탄하게 경쟁우위를 지켜가는 게 바로 그의 리더십이다.

전영현 사장 프로필△1960년 서울 출생 △1984년 한양대 전자공학과 졸업 △1989년 KAIST 전자공학 박사 △1992년 LG반도체 입사 △2000년 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사업부 입사(상무) △2006년 D램 설계팀장·개발실장(전무) △2009년 D램 개발실장(부사장) △2010년 플래시개발실장(부사장) △2012년 전략마케팅팀장(부사장) △2014년 메모리사업부장(사장)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