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실천이 중요한 금융감독 개선안

박종서 금융부 기자 cosmos@hankyung.com
“금융회사의 경영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해주겠다는데 이번에도 ‘말잔치’로 끝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9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금융감독 쇄신 및 운영 방향에 대한 한 시중은행 부행장의 촌평이다. 그는 “지난해 7월과 8월에도 금융규제 완화다, 보신주의 타파다 해서 대책이 쏟아졌는데 현장에서는 실감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볼 때 솔직히 기대하지 않는다”는 냉소도 덧붙였다.이런 반응이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개선안 대부분이 구체적 방안보다 선언적인 의지를 밝히는 수준에 그쳤다. 간섭을 최소화하겠다거나, 건전성이 양호하고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하면 자율성을 더 보장하겠다는 식의 원칙적인 입장 표명이 나열된 것이다. 손에 잡히는 대책은 없다.

배당 이자율 수수료 등에 대해 최소한의 기준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금융회사들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시장 가격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그동안 수차례 밝혀온 바다.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 한 ‘재탕 삼탕’ 대책이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금감원 입장은 여전히 모호하다. “내일 어떤 은행이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수수료를 100원 올리겠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다시 인하하라는) 전화를 바로 하지는 않겠지만 금융소비자 보호 차원도 생각해야 한다”는 답변을 내놓는 수준이다. 이렇게 애매한 입장이라면 금융회사로서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고민이 더 커질 뿐이다.해법으로 내놓은 내용도 겉도는 느낌이다. 유권해석, 비조치의견서 활성화, 5년 전 업무에 대해서는 검사대상 제외 등 금융당국의 ‘해묵은 레퍼토리’가 반복되고 있어서다.

금감원은 이번 대책을 발표하면서 경영간섭은 최소화하되 ‘대형사고’를 내면 ‘큰 칼’을 써서 ‘일벌백계’하겠다고 강조했다. 듣기 좋고 옳은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뒤따르지 않으면 공염불일 뿐이다. 혹여 규제는 그대로 남고 ‘큰 칼’만 새로 생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박종서 금융부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