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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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난 평생 네 번이나 입스(yips)를 고쳤지만 아직도 남아 있다. 그린에서 굴곡이 있는 2피트 퍼팅을 하느니 차라리 방울뱀을 만나는 게 낫겠다.” PGA 투어 최다승(82승) 기록을 세운 ‘골프의 전설’ 샘 스니드가 생전에 한 고백이다. 역사상 가장 부드러운 스윙을 자랑했던 그도 입스를 피해갈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입스는 과도한 긴장 끝에 엉뚱한 스윙이나 근육의 떨림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티 박스에 서는 순간 머릿속은 하얘지고, 손은 이유없이 떨린다. 짧은 퍼트를 할 때도 몸이 굳어지고 힘 조절이 되지 않는다. ‘혹시 안 맞으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이 겹쳐지면 상황은 더욱 나빠진다.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순간적으로(약 1000분의 1초) 무의식 상태가 된다. 전 세계 골퍼 4명 중 1명이 입스 때문에 고통받는다고 한다. 벤 호건, 톰 왓슨, 데이비드 듀발, 아널드 파머, 박세리 등 수많은 스타들이 입스에 발목을 잡혔다.입스라는 용어는 1920년대 명골퍼 토미 아머가 1967년 발간한 책에서 조기은퇴 이유를 설명하며 처음 썼다고 한다. 그의 표현처럼 ‘쇼트게임을 망가뜨리는 머릿속 경련’은 주로 퍼팅이나 드라이버샷에서 많이 나타난다. 골프뿐만 아니라 야구의 송구 실수, 농구의 자유투 실수 등 다른 구기 종목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크리켓과 볼링, 다트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건반을 두드리는 피아니스트 등 특정 근육을 반복 사용하는 사람에게 흔하다.
입스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치료법도 거의 없다. 다만 마음의 병인 것만은 확실하다. 스포츠심리학에서는 심리적 요인에 의한 입스를 초킹(choking)이라고 부른다. 퍼터를 롱퍼터로 바꾸거나 퍼터 잡는 방법에 변화를 주어 새로운 운동기억을 재프로그래밍하고, 심상을 이용한 인지 재구성 기법으로 치료를 시도하기도 한다. 볼펜을 손목에 끼는 방식이나 겨드랑이 연습법으로 손목꺾임을 방지하는 등의 테크닉 처방전도 있다. 하지만 정답은 없다. 평소 심리 훈련을 통해 불안과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능력을 기르는 수밖에 없다.
‘골프 황제’도 예외가 아니다. 타이거 우즈가 최근 3개 대회 연속 ‘상상하기 힘든 입스’로 체면을 구겼다. 흔히 있을 법한 퍼트나 드라이버가 아니라 칩샷과 피칭샷에서 뒤땅을 치고 ‘홈런’을 날리는 바람에 참담한 신세가 됐다. 이러다 세계 1위에서 1000위 밖으로 밀려난 데이비드 듀발처럼 될지 모른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게 입스라는 말이 실감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