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유료방송, 공정거래 시장 만들려면

"유료방송시장 슈퍼갑은 플랫폼사
독과점 차단 위한 점유율 규제 개선
시청복지 위해 지극히 당연한 일"

송종현 < 선문대 교수·언론정보학 sch2182@sunmoon.ac.kr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갑을문화는 어디에든 존재했다. 장유유서(長幼有序)로 대변되는 서열문화가 강하게 존재하는 동양에서는 인간관계에서도 숱한 갑을관계가 형성된다. 시장에서의 갑을관계는 주로 구매행위에서 발생한다.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자신의 물품을 선택하도록 판매자는 구매자를 ‘갑’으로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죽하면 ‘손님은 왕이다’라는 문구가 사라지지 않을까.

경우에 따라서는 ‘주인은 황제다’라는 문구도 유효하다. 지난해 한 제과회사가 출시한 허니버터칩은 수많은 과자 중의 하나임에도 맛의 차별화로 수요가 급증했다. 하지만 회사 사정으로 공급량이 모자라니 소비자들은 마트에서, 슈퍼에서 줄을 서서 구매해야 하는 웃지 못 할 풍경도 자아냈다. 해당 회사가 소위 말하는 ‘갑질’을 한 것이 아님에도 소비자들은 과자의 맛을 보기 위해 ‘을’을 자처하는 모양새였다.산업계에서도 특허상품이거나 대체상품이 없는 상품들은 공급 대비 수요가 많다 보니 ‘갑을 역전현상’이 자주 일어난다. 이런 경우 판매자 주도로 재화의 가격이 높게 책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힘에 의해 가격이 왜곡되면 최종 소비자의 부담은 당연히 늘어난다. 시장의 적정경쟁 및 힘의 균형 유지를 위한 정책에 관계당국이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다.

수백 개의 채널이 경쟁하는 유료방송 시장을 보자. 일반적으로 콘텐츠를 공급하는 유료방송 콘텐츠사(PP)보다 콘텐츠를 구매해서 시청자에게 전달해 요금을 받는 플랫폼사가 ‘갑’의 위치에 있다. 하지만 콘텐츠도 막강한 파워를 가질 수 있다. 단적으로 지상파 방송사들의 드라마, 예능 콘텐츠가 그렇다. 인기 프로그램 라인업을 갖추고 있는 CJ계열이나 종합편성 채널, 주요 경기 중계권을 보유한 스포츠채널들도 플랫폼과 동등한 위치 또는 그 이상의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플랫폼 시장의 힘이 적절하게 분산돼 있을 때의 얘기다. 가입자 시장을 독점해 ‘슈퍼 갑’ 지위를 확보한 플랫폼 사업자에게는 제아무리 좋은 콘텐츠를 가진 기업이라도 협상력을 발휘할 수 없다. 과자시장이라면 허니버터칩의 경우처럼 곧 경쟁상품이 생산되고 다양한 유통경로로 판매가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방송은 법적 절차에 의해 허가받은 사업자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매우 제한적인 시장이다. 게다가 유료방송 채널은 플랫폼 사업자가 확보한 가입가구를 통해서만 노출할 수 있다.그렇기 때문에 방송시장에서 힘의 균형은 철저히 법에 의해 유지돼야 한다. 방송관련법에는 일반 재화시장에서 보기 어려운 규제들이 있다. 방송사에 대한 대기업 또는 외국인 소유지분 제한이나 매출액, 가입자 점유율 제한까지도 적용하고 있다. 이는 시장의 경쟁 활성화와 힘의 균형을 유지해 시청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방송산업 생태계를 조성해 가기 위한 것이다.

국민에게 가장 좋은 것은 ‘갑을’이 무색할 정도로 판매자와 구매자 간 힘의 균형이 맞아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다면 소비자들도 시장원리에 의해 자연스럽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게 된다. 때문에 방송산업에서도 최소한 특정사업자의 시장 독과점을 차단하는 정책은 유지되는 것이 맞다. 특히 지금 국회에서 논의 중인 유료방송 점유율 규제 개선은 힘의 균형과 시청복지를 위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논의를 지체하거나 일각의 섣부른 규제완화 논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갑을’ 구도를 해체하는 방향의 정책이 소비자를 이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정책당국이 명심하기 바란다.

송종현 < 선문대 교수·언론정보학 sch2182@sunmoon.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