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동개혁을 10% 기득권과 합의한다는 게 말이 되나

특권해체, 실업구제, 비정규직 보호가 노동개혁의 옳은 방향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금요일 노·사·정 대표를 만나 3월까지 대타협을 이뤄달라고 당부했다. 노·사·정이 지난해 말 ‘노동시장 구조 개선의 원칙과 방향’에 관한 기본 합의안을 도출해 놓고도 진전이 없자 대통령까지 나선 것이다. 그런데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이 회의 직후 기자들을 만나 “정부의 일방통행은 안 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고 브리핑했고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가 “그런 발언은 없었다”고 반박하는 등 갈등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노총은 ‘들러리 설 수는 없다’는 내부 반발 때문에 오찬 회의 참석 여부를 전날까지도 결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대통령과 밥먹는 것조차 노동계의 눈치를 봐가며 겨우 성사시키는 마당에 무슨 ‘대타협’을, 그것도 다음달 말까지 이루겠다는 것인가.

노동개혁을 이루려고 한다면 노·사·정이라는 틀과 사회적 합의라는 도식부터 버려야 한다. 왜곡된 노동시장을 바로잡자는 논의에 기득권층인 10% 노동계가 결정권을 쥐고 있는 구조에서 무슨 개혁이 가능하겠나. 노동계는 그 대표성도 문제다.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2013년 기준으로 10.3%로 세계 최저수준이다. 이 10.3%에서조차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에 가입하지 않은 조합원이 20.7%나 된다. 더구나 이번 노사정위에 민주노총은 참여도 않고 있다. 전체 근로자의 최소한 90% 이상과 이해가 상치되는 노총위원장이 대타협의 주체가 돼 있는 것이다. 여성, 고령, 전문직, 외국인, 비정규직은 창구조차 없다. 대기업, 공기업 등 기득권층의 권리만 더 보호될 뿐이다. 여기다 더 강성인 민주노총의 선택에 따라 대타협은 언제라도 휴짓조각이 될 수도 있다. 민주노총은 이미 노동개혁에 반대해 4월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노사정위가 노동개혁을 가로막아 왔다는 비판을 받아온 건 이런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개혁은 보편적 이익의 재편성을 의미한다. 노조 기득권이 사회적 합의를 볼 일인가. 비정상적 노사정위 자체를 깨는 것부터가 개혁이다. 노동권력을 만들어낸 ‘87체제’로는 사회적 합의가 불가능하다. 대타협이 아니라 대결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