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 배워 러시아 진출한 삼성·LG에 입사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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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별수업 받는 모스크바 한민족학교 학생들러시아 모스크바에는 매년 설날이면 아이들이 한복을 입고 웃어른에게 세배하는 ‘작은 대한민국’이 있다. 국익에 이바지한 공로로 지난해 말 법무부가 특별귀화를 허가한 엄넬리 씨(75)가 세운 ‘모스크바 한민족학교’다. 이 학교는 러시아의 일반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던 고려인 2세 엄씨가 동포들에게 한민족의 주체성과 긍지를 심어주기 위해 1992년 설립했다. 한국의 초·중·고교에 해당하는 교과과정을 모두 운영하는데 일반 교과목뿐만 아니라 한글과 한국 전통문화 등도 함께 가르친다. 설에는 설 전통문화를 가르치는 특별수업을 개교 때부터 하고 있다.
고려인 2세 엄넬리 씨 1992년 설립
초·중·고 과정…전통문화 가르쳐
설에 앞서 세배 드리기 등도 배워
엄씨와 교사들은 “이번 설날인 19일에도 특별수업을 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소개했다. 이날 전교생은 학교에서 준비한 한복을 입고 특별수업을 한다. 엄씨는 “학교 설립 초기에는 한복이 몇 벌 없어 학생들이 줄서서 옷감을 만져보기만 했다”며 “서울교육청이 이런 사실을 알고 한복을 1000벌 보내주는 등 주위의 도움으로 지금은 모두가 한복을 입는다”고 말했다. 강당에 차례상을 차려놓고 전교생이 돌아가며 절을 하는 수업도 한다. 기술(한국의 기술·가정에 해당) 시간에는 떡국 등 설 전통음식을 만드는 법을 배우고 함께 만들어 먹는다. 윷놀이 등 전통놀이나 부채춤 등 전통공연도 한다.설날 특별수업의 백미는 어른에게 세배하기다. 설에 앞서 1월 말부터 학생들에게 세배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설날 등교하기 전에 집안 어른에게 세배하라”고 당부한다. 엄씨는 “손자 손녀에게 세배를 받은 노인들이 학교로 전화해 울면서 고맙다고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설날에는 강당에 동포들을 초청해 학생들이 단체로 세배하는 시간도 가진다. 학생들이 이날 엄씨를 찾아와 세배하면 엄씨는 세뱃돈조로 선물을 준다. 올해는 색연필을 선물로 마련했다. 젊은 교사들의 세배에는 약간의 용돈으로 답례할 계획이다.
오는 21일에는 인근의 다른 민족학교에 가서 한국의 설날을 알리는 시간도 가지기로 했다. 그 학교 교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한국에서는 어떻게 설을 준비하고 맞는지 소개한다. 한국 전통공연을 보여주는 시간도 가질 계획이다.
엄씨는 “설립 초기에는 학생 대부분이 고려인, 교민 등 한국계였지만 지금은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다른 나라 학생도 20% 이상 된다”며 “LG 삼성 롯데 등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한글과 한국문화를 배우러 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대인 등 현지의 다른 민족 학교보다 외국인 비율이 월등히 높다는 게 엄씨의 설명이다. 이들도 이번 설 특별수업에 참가해 한국 전통문화를 배우게 된다. 그는 “심지어 학부모가 한글을 배우기 위해 학생과 함께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며 “그럴 때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아주 뿌듯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