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콥트교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푸른 바닷가에 주황색 죄수복을 입은 21명을 무릎 꿇리고 검은 복면의 테러범들이 칼을 겨누고 있다. 핏빛 바닷물을 보여주며 이슬람 음악이 흐른다. 수니파 급진주의 무장단체인 IS가 이집트 콥트교도 21명을 참수했다며 공개한 동영상이다. 제목은 ‘십자가의 국가에 보내는 피로 새긴 메시지’다. IS는 이 끔찍한 동영상을 통해 이슬람 대 기독교라는 종교 프레임으로 전선을 바꿔가려고 시도하고 있다. 십자가의 국가란 기독교 국가이고, 콥트교는 바로 이집트의 기독교다.

콥트교는 아랍 세계에서 가장 큰 기독교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교도는 850만여명으로 이집트 인구의 약 10%다. 이집트의 나머지 90%는 수니파 이슬람교도들이다. 이집트 밖에도 100만여명의 교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단에 50만여명, 미국에 9만여명을 비롯해 캐나다 호주 이탈리아 에티오피아 리비아 등에도 신도가 있다.이 종교는 마르코(사도 마가)가 서기 50년께 이집트 북부 알렉산드리아에 교회를 세우면서 시작됐다. 콥트는 고대 그리스어로 이집트란 뜻이다. 콥트교가 로마교회에서 분리된 것은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로마교회가 이단으로 선언하면서였다. 콥트가 예수를 인간이면서 신으로 보는 로마교회와 달리 예수의 신적인 면만을 인정하는 단성설을 믿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641년 이집트가 이슬람화되기 전까지는 이집트의 민족종교였다. 이후 콥트교는 모진 박해를 받았다. 현대에 와서도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에게 자주 공격을 당했다. 2011년에는 알렉산드리아 콥트교회에서 차량 폭탄테러로 21명이 숨지는 사건도 있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콥트교는 초대교회의 신앙과 전통을 잘 보존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도원 문화는 콥트교에서 시작된 것이다. 콥트교는 270년께 홍해 연안을 시작으로 나일계곡 쪽에 수도원을 지었다. 엄격한 규율과 노동, 신에 대한 헌신을 사명으로 하는 수도원 문화가 여기서 만들어졌다. 콥트교인들은 창조성이 뛰어나 알렉산드리아를 이끈 중추 세력이었다고 한다. 특히 직물산업 분야에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었는데 그들이 유럽에 전한 복잡한 무늬의 채색 직물은 당시 유럽으로서는 충격적인 혁신제품이었다.

이슬람의 박해 속에서 수백년간 숨어지내던 콥트교가 세상에 다시 알려진 것은 1935년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공격하면서였다고 한다. 이번에도 전쟁과 테러 속에서 다시 알려지게 됐다. 실로 딱한 일이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