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난이 만든 트렌드…거래량 늘어도 집값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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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은행 스타테이블부동산 시장이 투자에서 거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새로운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 이유는 전세난이다. 전세난에 지친 세입자들이 주택 시장을 이끄는 핵심 세력으로 부상하면서 종전과는 다른 현상을 만들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거래량이 크게 늘어도 가격은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 1월에도 주택 거래량은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집값은 대체로 제자리다. 1월 전국 주택가격은 전달 대비 0.13% 올랐다. 지난해 1월 상승률(0.11%) 수준이다.일반적으로 거래량이 늘면 가격이 오른다. 매도자들의 집값 상승 기대 심리 때문이다. 하지만 침체 국면에서는 이런 기대가 크지 않아 거래량 증가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매도자들은 꾸준히 매물을 공급하고, 매수자들은 굳이 추격 매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래량이 늘어도 가격이 오르지 않는 현상은 부동산시장의 새로운 저성장 패러다임이다.
인기 지역의 집값이 오르면 주변 지역까지 확산되는 ‘물결 효과’도 거의 사라졌다. 요즘은 강남권보다 외곽 지역이 더 많이 오른다. 지난 1월에도 강남권보다 수원 영통, 경기 이천, 오산 지역의 집값이 더 올랐다. 전세난에 떠밀려 외곽에서 작은 집이라도 장만하려는 수요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아파트보다 연립, 다세대, 단독 주택의 거래량이 늘어난 것도 특징이다. 국토교통부의 1월 주택거래량 조사를 보면 수도권 기준으로 아파트는 지난해 1월보다 29.4% 증가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연립, 다세대 거래증가율은 41.5%, 단독, 다가구 주택은 37.9%를 기록했다.과거 연립, 다세대 등은 집값이 잘 오르지 않고 주거 환경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선호하지 않았던 주택이다. 그러나 전세난이 가중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구매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세입자들이 비싼 아파트를 사기 어려워지자 차선으로 이들 주택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올해는 이사 수요가 많은 홀수해다. 또 재건축 이주에다 주택의 월세화 현상이 겹쳐 전세난이 더 가중될 것이다. 전세난에 지친 세입자들은 어쩔 수 없이 집을 사게 될 것이다. 이는 비자발적인 수요에 가깝다.
박원갑 < KB국민은행 WM컨설팅부 부동산수석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