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0년째 100개에 맴도는 벤처캐피털

정부 자금 대형업체에 편중

창업보다 대형社로 이직
▶마켓인사이트 3월2일 오전 8시11분

설립 3년차 창업투자회사(벤처캐피털)인 A사는 정부의 벤처자금을 지원받는 ‘벤처펀드 운용사 선정’에 다섯 번째 도전하고 있다. 지난 네 차례 심사에서 모두 1차 관문(서류심사)도 넘지 못했다. 신생 회사인 까닭에 투자 실적이 부족해 정량평가에서 최저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정부 자금 지원 여부가 이처럼 실적에 따라 결정되면서 벤처캐피털업계에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정부의 벤처 육성 자금이 오래된 대형 업체에 집중돼 돈을 받지 못하는 신생 벤처캐피털은 문을 닫는 사례가 늘고 있다.

벤처캐피털이 운용하는 펀드 규모가 12조2522억원으로 10년 전보다 세 배 늘었지만, 중소기업청에 등록된 벤처캐피털은 작년 말 현재 104개로 2004년 105개보다 오히려 감소했다. 정부의 모태펀드 출자금 1조9748억원 중 절반가량이 상위 20% 업체에 몰릴 정도로 실적이 없는 신생 업체는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다.벤처업계 한 관계자는 “작년에 벤처 육성을 위해 조성된 각종 정부 자금이 유입된 벤처펀드 규모가 사상 최대인 2조5382억원에 달할 정도로 커졌다”며 “그러나 자금 배분 방식은 변화가 없는 등 벤처를 키우겠다는 정부에 벤처 정신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 자금, 벤처캐피털 104곳 중 20곳에 절반 몰려

▶마켓인사이트 3월2일 오전 9시15분
벤처자금 규모 증가에 맞물려 벤처캐피털 수가 늘어나지 않는 원인은 자금의 ‘쏠림현상’에 있다. 한국경제신문의 분석 결과 현재 한국벤처투자의 모태펀드로부터 자금을 출자받은 운용사는 총 88개. 이 중 상위 운용사 20개가 받은 출자금은 전체의 50%에 육박했다. 전체 벤처캐피털 104개 중 16개는 정부 출자금을 한푼도 받지 못했다.

바이오 분야 전문 벤처캐피털을 창업하기로 마음먹었다가 접은 20년차 벤처캐피털리스트는 “벤처거품이 꺼진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정부 자금이 들어와야 민간자금도 투자되는 게 거의 정석처럼 굳어졌다”며 “따라서 정부의 벤처자금을 운용할 수 있는 자격을 취득하는 게 벤처캐피털의 생존을 위한 절대적 조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이 결과 업계의 유능한 인재들도 신생 벤처캐피털을 ‘창업’하기보다는 대형 벤처캐피털에 이직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신생회사는 창업을 해봐야 쌓아놓은 실적이 없어 정부자금을 받지 못하고 금방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다.

모태펀드 산업은행 등 벤처펀드에 정부 자금을 지원하는 출자자들은 수익을 내는 게 중요한 출자기준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력 검증이 안된 신생업체보다는 경험이 풍부한 곳에 돈을 줘야 이익을 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손해가 발생할 경우 책임추궁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위험보다는 안전을 택하려는 속내도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한 출자기관 관계자는 “출자금은 세금으로 조성된 만큼 손실회피 역시 중요한 요소”라며 “실적이 좋은 회사에 출자해야 혹시 문제가 생겨 내부감사를 받더라도 책임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오동혁 기자 otto8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