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시진핑의 칼과 마카오 추락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젖은 물건들을 육지에서 말리고 싶다.” 16세기 초 포르투갈 뱃사람들이 마카오에 상륙하며 내세운 이유다. 이들은 현지 관리에게 뇌물을 건네고 체류 허가를 받았다. 이후 매년 뇌물을 주며 눌러앉았다. 1572년부터는 조정에 연 500냥의 땅값을 바치는 조건으로 공식 거주권을 따냈다. 뇌물 주는 자리에 우연히 조정에서 온 관리가 있었는데, 뒤가 켕긴 지방관이 부득이 돈을 국고에 넣었다고 한다.

이 때부터 마카오는 광둥성 샹산현에서 마카오로 이름이 바뀌었고, 1999년 말 중국에 반환될 때까지 약 450년간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다. 이곳을 거쳐 중국으로 전해진 문물은 한둘이 아니다. 기독교와 천문학, 유클리드 기하학은 물론이고 동·서양 지식교류의 가교 역할을 한 마테오 리치도 이곳으로 들어왔다. 한국 최초의 가톨릭 사제인 김대건(안드레아), 최양업(토마스) 신부 역시 이곳에서 공부했다.서울 중구 면적에 55만명 이상이 북적대는 마카오는 ‘동양의 라스베이거스’다. 카지노 경제가 국내총생산(GDP)의 94%나 된다. 주요 고객은 중국 본토인이다. 외래 관광객의 60%인 중국인 덕분에 2013년 카지노 매출이 452억달러(약 50조원)에 달했다. ‘원조’ 라스베이거스보다 6배나 많다.

그런 마카오의 카지노 수입이 지난달 역대 최대폭으로 감소했다.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49%나 줄어든 것이다. 9개월 전부터 쪼그라들었지만 반토막까지 났으니 난리다. 원인은 중국 정부의 부패 척결 정책이다. 시진핑 주석의 사정 칼날 앞에 도박꾼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춘제(중국 설) 때도 손가락만 빨았다. 인근의 홍콩 경기도 10년 만에 최악이라지만 마카오는 더하다.

시 주석의 ‘국가 대개조’ 칼날이 시퍼렇다. 6차례나 암살 위기를 겪으면서도 강력한 소탕작전을 펴고 있다. 회의실 시한폭탄과 독극물 주사 위협에 이어 최근엔 쿠데타 모의설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시 주석의 부패척결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관료부패 규모가 조 단위에 이른다. 관시(關係)보다 법과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는 원칙 사회를 만들 수 있다면 카지노 몰락 정도는 감수하겠다는 것이다.원래 뇌물로 시작된 게 마카오의 역사다. 시 주석의 목숨 건 ‘호랑이(악덕관료) 사냥’을 보면서 국가 지도자의 역할을 새삼 생각한다. 강한 리더는 존경의 대상이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우린 어떤가. 뭘 해도 결기가 있어야 성공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