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천자문과 물방울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물방울 화가’ 김창열 화백의 ‘회귀’(112×162cm), 2013년작
한국의 대표적인 인기 화가 김창열 화백(86)은 1972년 파리의 권위 있는 초대전인 ‘살롱 드 메(Salon de mai)’에 물방울을 극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을 출품해 세계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김 화백은 초창기엔 물방울을 신문지 위에 그렸다고 한다. 활자 위에 물방울을 그려 넣으면 더 투명한 느낌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이후 캔버스로 옮겨진 물방울은 1986년부터 천자문을 바탕에 깔고 재탄생했다. 김 화백은 물방울 속에 분노, 불안, 공포 등 문자로 된 모든 것을 용해시켜 투명한 무(無)의 세계로 되살렸다.

나이 60줄을 넘긴 1990년대에 접어들자 그는 물방울 그림에 ‘회귀’라는 새로운 제목을 붙이기 시작했다. 환갑을 시점으로 다시 태어나고, 새로 시작해 원점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에서다. 초롱초롱 빛나는 물방울이 자리 잡고 있는 이 그림은 ‘회귀’ 시리즈의 대표작. 인쇄체로 쓰인 천자문을 배경으로 투명한 물방울들이 무리 지어 누런 화면 전반에 흩어져 있다. 이 작고도 큰 호수에는 변화와 충만의 물결이 출렁거린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