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월스트리트의 '장그래' 이야기

영 머니

케빈 루스 지음 / 이유영 옮김 / 부키 / 416쪽 / 1만4800원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주연을 맡은 1990년대 월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선 스트리퍼의 엉덩이에 코카인을 뿌려놓고 흡입하는 장면이 나온다. 월가는 최고급 샴페인과 캐비어가 즐비한 파티가 날마다 벌어지는 장소로 묘사되곤 한다. 하지만 2008년 불어닥친 금융위기로 월가 회사들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보너스가 줄고 고용 안정성이 바닥을 치면서 미국 엘리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성공 경로였던 월가는 예전의 명성을 잃었다.

《영 머니》는 금융위기 이후 월가에 첫발을 내디딘 1년차 애널리스트 8명을 심층 취재한 책이다. 저자는 뉴욕타임스 출신 잠입 전문 취재 기자로 아준 첼시 데릭 제러미 샘슨 리카르도 수진 제이피 등 8명의 신입사원이 좌충우돌하며 월가에 적응하는 모습을 그렸다.이들이 겪은 월가는 주당 100시간 근무, 연봉 15만달러의 비정규직이었다. 사회적 인식도 나빠졌다. 한 트레이더는 “난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절대 여자에게 얘기하지 않아. 헤지펀드 쪽에 관련돼 있다고 하면 우리 어머니 세대의 은퇴자금을 갈취하는 놈으로 취급당했잖아”라고 말한다. 월가의 비밀 사교 모임 ‘카파 베타 파이’에선 중산층 가계의 금융자산을 날려버린 장본인들이 금융위기를 조롱하며 웃는다.

저자는 취재 기간 8명의 신입사원을 비롯한 젊은 인재들이 돈보다 더 중요한 것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아이비리그 학생들은 ‘월가 말고도 갈 곳은 많다’는, 이른바 ‘월가 회의론’을 얘기한다. 전체 경제의 일부에 불과한 월가가 똑똑한 인재들을 독점하다시피 쓸어가 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