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펀도 고민한 바닥경기 진단…흐름 어떻게 읽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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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미 기자의 경제 블랙박스“소비와 투자심리 개선 등 긍정적 조짐이 있지만 내수 회복세가 공고하지 못하다.”(3월10일 기획재정부 ‘최근 경제동향’)
“내수가 부진한 모습을 나타냈고 경제주체들의 심리도 뚜렷이 회복하지 못했다.”(3월12일 한국은행 통화정책방향)경기 진단은 경제정책의 출발점이다. 경기가 회복궤도에 올랐다지만 그 속도가 어느 수준인지가 문제다. 지난해 8월부터의 세 차례 기준금리 인하 등에 힘입어 경기가 뜀박질을 준비 중인지, 아예 주저앉는 중인지 궁금하다.
판단은 쉽지 않다. 지표 움직임이 미약한데다 일부는 방향도 엇갈리고 있어서다. 통계청이 집계한 지난 1월 소매판매는 전년 동월보다 3.1% 감소했다. 2월 백화점과 대형마트 매출은 1년 전보다 각각 7.1%, 30.5% 늘었다. 작년엔 1월이었던 설이 올해는 2월이어서 해석이 까다롭다.
소비심리가 안 좋다지만 해외 직접구매(직구)는 급증세다. 국내 거주자의 해외 카드 구매실적은 지난해 22.7% 급증하며 10조원을 넘어섰다.통계청의 ‘경기순환시계’는 각 지표가 경기순환 주기상 어디에 있나 보여준다. 지표가 ‘하강’ 국면이라면 전월보다 하락해 기존 추세를 밑돈다(경기 후퇴)는 의미다. 그러다 저점을 치고 상승하면 ‘회복’, 계속 올라 추세를 웃돌면 ‘상승’, 정점을 치고 내려오면 ‘둔화’다.
1월 경기순환시계(3월10일 기준)에 따르면 10개 지표 가운데 1개(건설기성액)는 회복 국면, 4개(설비투자, 수출, 수입액, 취업자 수)는 상승 국면에 있다. 절반은 전월보다 개선됐다는 의미다. 나머지 절반은 후퇴했다. 1개(서비스업생산)는 둔화, 4개(광공업생산, 소매판매액, 기업경기실사지수, 소비자기대지수)는 하강 국면이다.세월호 사고 직후였던 작년 5월보다는 나아진 것이다. 당시엔 10개 가운데 8개가 하강 또는 둔화 국면에 있을 정도로 경기가 나빴다. 다만 개선 움직임이 미약해서 체감하기 쉽지 않았다. 통계청 관계자는 “최근 2~3년간 경기순환시계를 보면 지표들이 원점에 다닥다닥 붙어 움직인다”며 경기 판단이 그만큼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한은은 최근 경기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수시로 모니터링한다. 공식 통계는 발표까지 한두 달 걸릴 때가 많기 때문이다. 시장 관계자를 인터뷰하는 것은 기본이다. 비공식 통계나 업계 내부 자료도 동원한다.
기재부 안에서 참고하는 것은 휴대폰 번호이동 실적, 차량 등록 대수, 전력 사용량 등이다. 이외에도 수많은 것들을 점검한다고 한다. 수십년간 물려받은 노하우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기자가 자세하게 물을 때마다 ‘업계 기밀’이라며 알려주지 않았다.한은 금융통화위원들도 나름의 경기 진단법을 갖고 있다. 그중 한 명은 명동 거리, 특히 백화점 꼭대기 층을 자주 들러본다고 한다. 수많은 에스컬레이터를 거쳐서라도 꼭 뭔가를 사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신사복 매장도 중요하다. 유행에 무딘 남성들이 옷을 많이 사면 그만큼 가계 사정이 좋아졌다는 뜻이라고 한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동네 세탁소의 손님 수, 쓰레기 배출량을 눈여겨봤다고 했다.
시대에 따라 경기 진단법도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온라인 쇼핑이 번성하고 해외 직구까지 급증하는데 백화점만 들여다봐선 소비를 진단하기 어렵다. 해외로 빠져나가는 소비가 늘어나는데도 국내 소비가 줄어드는 것만 갖고 소비심리가 위축됐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소비 ‘액수’만으로 경기를 판단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불황이나 저유가로 제품 가격이 많이 내렸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책 담당자들의 고심은 깊어진다.
김유미 경제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