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중국 주도 AIIB 가입해야 하나

중국이 올해 말 창설을 목표로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한국이 가입해야 할지를 놓고 찬반 논란이 커지고 있다.

AIIB는 초기 자본금 500억달러(1000억달러 목표)를 기반으로 해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들의 사회기반시설(인프라) 개발에 투자하게 될 국제금융기구다. 지금까지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태국 싱가포르 베트남 필리핀 등 아시아지역 국가뿐만 아니라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도 AIIB 참여를 선언했다. 창설 멤버로 참여할 수 있는 시한은 이달 말까지다.중국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경제적 주도권을 강화하기 위해 AIIB 창설을 주도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기존의 아시아개발은행(ADB),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의 대항마 성격이 짙다. 미국이 주요 동맹국의 AIIB 참여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배경이다.

가입에 찬성하는 진영은 한국 기업의 아시아 인프라시장 진출이라는 경제적 이점과 중국과의 협력 강화라는 외교적 이점 면에서 실리를 챙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 진영은 AIIB를 통한 중국의 패권 장악, 중국 중심의 AIIB 지배구조 등을 우려해 가입에 신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적극론 / “AIIB 가입은 우리 국익에 부합…기업들 亞 SOC시장 진출 늘 것”한반도 중심의 동북아 협력 촉매제 될 것

지난해 7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 이후 한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과 고(高)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유치 문제로 국가적인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결정하지도 않은 사드 배치에 과민하게 반응하면서 한국을 통해 이를 저지하려고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의 AIIB 가입을 중국의 국제금융질서 개편 노력에 합세하는 것으로 인식해 반대하고 있다.그런데 한국은 이들의 개입을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서 입장 정리를 못하고 있다. 중국의 사드 압박을 우리 주권, 군사 주권에 대한 개입이라고 정의하고 미국과는 AIIB 가입 문제를 긴밀하게 협의 중이다. 하지만 중국의 개입은 우리 주권에 대한 개입이 아니다. 사드는 치외법권지역인 주한미군기지에 배치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개입이야말로 우리의 주권, 즉 자결권에 개입하는 문제다. 이런 잘못된 이해가 한국이 AIIB 가입 여부를 결정하는 데 발목을 잡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모두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익을 위해 우리는 AIIB에 가입할 것이고 미국은 주한미군기지에 사드를 배치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AIIB 가입이 필연적인데 정부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한미군기지에 사드를 배치하는 것은 미국 예산의 제약으로 인해 단기간에 이뤄지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급한 것은 AIIB에 창립 멤버로 가입을 결정하는 일이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서구 국가가 연쇄적으로 가입하는 마당에 미국 눈치를 보다가 막차를 타는 우리의 모습을 중국이 어떻게 보겠는가. 한심한 형국이다. 더 이상 늦지 않게 하루빨리 AIIB의 창립 멤버로 가입을 선언하고 이사국으로서 맹활약할 수 있는 입지를 신속히 다져야 할 것이다. AIIB 가입은 우리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AIIB 가입은 한국 경제에 상상을 초월하는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내수 진작을 위한 사회간접자본(SOC)의 추가 재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정부의 SOC 예산은 감소했다. 올해 그나마 3% 증가했다. SOC 사업이 활성화하면 신산업 및 신기술 개발과 고용창출의 기회가 극대화되는 효과가 있다.
한국은 경제 위상이 높아지면서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에서 SOC 투자 수혜자격을 상실한 지 오래다. 그래서 민간자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정부가 손실 보증을 해주는 상황이다. 정부가 투자 기업의 손실을 보전하고 정부 보조금으로 충당하는 기형적인 구조다. 이런 구조를 해외 공적 자금으로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AIIB가 제공할 것이다.

AIIB가 창설돼 아시아지역 내 SOC 건설사업이 활발해지면 한국 기업의 수주도 대폭 늘어날 수 있다. 아시아의 SOC 사업은 연 8000억~2조달러 규모에 이르는 블루오션(비경쟁시장)이다. AIIB에 가입하지 않는다면 우리 기업의 시장 참여 기회도 상실된다.

AIIB 사업은 한반도 중심의 동북아지역 경제협력에 촉매제가 될 것이다. 또 통일 한반도에 대비한 우리의 동북아개발은행 구상 실현에 AIIB의 역할과 지원은 중요하다. 국제금융기관의 사업중점이 더 이상 SOC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AIIB 가입 결정이 지지부진해 동북아개발은행의 창설을 주도할 때 어떤 역효과가 날지 걱정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한국은 창립 회원국으로서 가입을 즉각 선언하고 서구 국가들과 협력해 AIIB의 지배구조를 최상의 국제 수준으로 만드는 게 국익을 보장하는 길이다.

신중론 / “참여 시기·방법 신중히 접근을…발언권 확보해 중국 견제해야”

운영의 투명성·의사결정 공정성 요구해야

작년 7월 방한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국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을 간곡히 요청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신중한 검토를 필요로 한다”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미국의 압력 때문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최근 영국에 이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의 주요국이 줄줄이 AIIB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속에 AIIB 가입을 망설이던 한국의 입지가 편해졌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한국은 가장 좋은 타이밍을 놓쳤다. 중국이 아쉬웠던 때 적극적으로 명확한 가입 전제조건을 내밀었어야 했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 수단으로 AIIB를 활용하지 말고, 북한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제도적 투명성과 경제적 타당성의 기초 위에서 기구 설립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제 문제는 AIIB에 가입할지 여부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참여하느냐가 됐다. 가입을 서두를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얘기다.

우선 중국이 AIIB를 통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미국은 중국이 신(新)실크로드를 추진하고 역내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AIIB를 주도한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중국은 이를 서태평양지역에서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미국의 견제라고 반박한다.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는 중국의 진정한 의도에 달렸다.

AIIB가 아시아 역내 인프라 부족을 보완할 수 있는 공정한 국제 금융기구로서 제 몫을 할 수 있다면 이 같은 논란은 해소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럽 주요국들이 AIIB에 가입한 것은 미국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이라고 보기 어렵다. 어차피 출범할 기구라면 발언권을 확보해 중국의 일방적 영향력을 견제하고 겉으로는 중국의 희망사항을 수용함으로써 앞으로 중국 내수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이 AIIB에 가입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면 적극적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AIIB가 중국의 전략목표 추진 수단이 아니라 진정한 아시아 경제협력기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남북한과 중국을 잇는 수송 인프라 건설 등의 시범사업 추진을 AIIB 가입 조건으로 제시하는 방안도 바람직하다. AIIB 운영과 관련한 투명성과 의사결정 구조의 공정성도 요구해야 한다. 세계은행 및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기존 국제 금융기구와의 상호 보완성 확보를 위한 대안 제시도 필요하다.
이런 요구가 의미를 가지려면 참여 자본 비율에 따른 의사결정권 배분으로 미국이 주도해 온 국제통화기금(IMF)이나 50년 가까이 일본이 총재직을 유지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ADB의 개혁 필요성에 한국이 목소리를 내면서 균형 잡힌 모습을 보여야 한다.

중국이 초기 출자금의 절반을 내고, 중국 주도로 기구를 운영할 것이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 일부의 추측처럼 한국이 가입 반대급부로 부총재 등의 직책을 맡는다고 해도 전체 구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미국에는 안보 차원의 고(高)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를, 중국에는 경제 차원의 AIIB를 내주는 ‘균형 외교’에 방점을 둔 나머지 정작 한국의 실질적인 국익을 저해할 수 있는 중국의 전략적 이익 추구를 방임하는 것이다.한국은 유럽과는 달리 중국의 거대한 흡인력에 쉽게 다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미국이 사드 배치에 초점을 맞추고 AIIB 문제에 대해 한 걸음 물러섰다고 해서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과 이익을 공유한다는 식의 초라한 견강부회(牽强附會)는 그만둬야 한다.

김주완/전예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