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시간의 99%를 실패하는 일에 쓴다"…끝없는 열정으로 도전…'車 왕국' 건설한 발명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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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 of the month - 혼다 뉴 레전드
창업주 故 혼다 소이치로 회장
16세때 도쿄 車 정비업소 입사…입사 6년 만에 귀향해 첫 창업
지역 최대 정비공장으로 성장…부품사업 넓혀 기술연구소 설립
전쟁 후 軍에서 쓰던 소형 엔진, 자전거에 달아 모터사이클 생산
4년 뒤 첫 자동차 S 시리즈 출시…30년간 경영…일본 車 강국으로

이외에도 다양한 말들이 따라 붙지만 소이치로는 단 하나로만 불리길 원했다. 바로 기술의 혼다 소이치로다. 혼다는 끊임없는 노력과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으로 일본은 물론 전 세계 엔지니어와 기업가들에게 가장 존경 받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혼다는 6세 때 마을 어귀에서 처음 포드의 대량생산 차량 ‘모델 T’를 목격한다. 그의 인생 향방을 결정짓는 일대 사건이 됐다. 그는 자동차에 매력을 느껴 철공소에서 자동차 수리업을 겸한 아버지 곁에서 꿈을 키웠다. 이후 1922년 자동차 잡지에 난 구인 광고를 보고 도쿄로 상경했다.
도쿄의 자동차 정비업소 ‘아트 상회’로 들어간 혼다는 기다림 끝에 정식 정비공으로 일하게 됐다. 아트 상회에 입사한 지 6년 만인 1928년, 그의 나이 22세 때엔 고향으로 돌아와 '아트 상회 하마마츠 지점'을 열었다. 혼다의 뛰어난 정비 기술로 사업은 번창했다. 3년 만에는 종업원 50명을 거느린 하마마츠 최대 규모의 정비 공장으로 성장했다.그는 사업에서 마련한 자금으로 자동차 경주에도 참가했다. 하지만 경주 중 큰 사고를 당해 18개월 간 병원신세를 져야 했고, 결국 선수의 꿈을 접고 엔지니어의 길을 걸었다.
바타바타 엔진의 성공에 힘입어 1948년 9월 혼다기술연구소를 혼다기연공업주식회사로 바꾸고 정식 설립인가를 받았다. 경영은 동업자였던 후지사와 타케오에게 맡기고 기술 개발에만 전념했다. 1958년에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링 모터사이클인 ‘슈퍼커브 C100’을 내놓았다. 이 차량은 57년 동안 총 8000만대 가까이 팔렸다.
창업 후 30년 동안 회사를 이끌어 온 혼다 소이치로 회장은 공기로 엔진의 열을 식히는 공랭식 엔진 예찬론자였다. 하지만 세계 자동차 기술 흐름은 물로 공기를 식혀 효율성과 내구성을 높인 수냉식 엔진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에 그는 1973년 은퇴를 선언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퇴임식에서 그가 한 말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나는 많은 꿈을 이루었지만, 실패도 많았다. 그러나 실패를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실패로 인해 지금의 혼다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의 99%를 실패하는 일에 쓴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