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되찾은 日기업 더 강해졌다] 10조원 적자→2조 순이익…히타치의 기적 일군 '트리플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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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격적 사업 재편으로 부활일본 도쿄 마루노우치의 히타치제작소 본사 엘리베이터와 복도, 사무실 등에는 ‘소셜 이노베이션(social innovation·사회 혁신)’이란 포스터가 붙어 있다. 이곳저곳 비치된 사내 TV에선 소셜 이노베이션의 의미에 대한 동영상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처음 찾은 사람도 소셜 이노베이션이 회사의 비전이란 점을 곧바로 알 수 있다.
구조조정 '속도전'…LCD사업 등 제값 받고 넘겨
예외 없는 성과주의…연공서열 없애 조직에 활기
M&A로 신사업 발굴…철도·로봇 등 20조원 투입
소셜 이노베이션은 히타치가 갈 길을 뜻한다. 히타치는 2008년만 해도 반도체, TV, 가전 등을 주력으로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그해 7873억엔(당시 환율 기준 약 10조2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일본 제조업체가 기록한 연간 최대 순손실이었다. 이후 히타치는 살기 위해 변신을 꾀했다. TV와 가전 등 주력사업을 버렸다. 대신 인프라 시스템, 정보·통신 시스템, 전력 시스템 등 이른바 인프라 사업을 주력으로 삼았다. 이를 통해 사회 혁신에 기여하자는 취지였다. 히타치의 지난 회계연도(2014년 4월~2015년 3월) 영업이익은 5800억엔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상 최대다.◆경쟁력 없는 사업은 정리
히타치는 1910년에 설립됐다. 모터로 시작해 반도체, 가전제품, PC 등 전자제품으로 영역을 넓혔다. ‘종합 전자기업’으로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2008년 초유의 위기가 닥쳤다. 전자제품 시장은 급성장한 삼성전자 등에 빼앗겼다.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더해져 실적은 속절없이 추락했다.비주력 계열사에 있다가 2008년 그룹 핵심 회사인 히타치제작소에 구원투수로 영입된 가와무라 다카시 최고경영자(CEO)는 일단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한국과 중국의 추격으로 부가가치가 떨어지는 범용품 사업은 대폭 줄였다. 대신 인프라, 정보기술(IT) 등에 집중하자는 목표를 내걸었다. 당시만 해도 상당한 매출을 내던 액정표시장치(LCD) 사업은 파나소닉에,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사업은 웨스턴디지털에 넘겼다.
모든 구조조정은 ‘100일 계획’이라고 이름 붙인 다음 발표 후 100일 이내에 처리했다. 빨리 처리해야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고 반발도 적기 때문이다. TV 등 경쟁력을 잃어가는 사업은 이 같은 속전속결식 구조조정을 통해 정리했다.◆성과 중심 조직 체계 구성임금 및 조직관리 체계도 바꿨다. 연공서열을 없앴다. 전 세계 지사의 직원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도록 했다. 중국 지사 재무팀이나 일본 본사 재무팀은 모두 같은 기준에 따라 평가받는다.
조직은 인프라, IT, 전력, 건설기계, 부품, 자동차 등 6개 그룹으로 나누고 각각을 하나의 독립된 회사처럼 운영하게 했다. M&A 등 조직 운영과 관련된 사실상의 모든 권한을 그룹장에게 주되, 전년의 실적에 따라 각 그룹이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을 유동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했다.
또 산하에 있는 모든 계열회사를 최대한 세세하게 독립법인으로 분리했다. 이 때문에 자회사 숫자는 2008년 말 943개에서 지난해 말 983개로 40개 늘었다. 회사마다 다른 임금체계를 적용하기 위해서다. 자회사의 가치나 능력에 따라 유연한 임금체계를 만들 수 있다. 특히 자회사 수는 해외에서 많이 늘어났다. 같은 기간 해외 자회사 수는 540개에서 710개로 늘어났다.◆공격적인 M&A
신사업 개발엔 공격적 투자를 단행했다. 히타치는 지난 2월 이탈리아 철도업체 핀메카니카를 2500억엔(약 2조3100억원)에 매입하는 등 M&A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뷰로반다익에 따르면 히타치가 지난 7년간 M&A에 투자한 돈만 20조원에 이른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가 쓴 돈(약 8조원)의 2.5배에 이른다.
제각각 흩어져 있던 그룹 내 연구소도 2012년 3개로 통합했다. 미조구치 겐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본부장은 “연구소는 철저하게 미래 신사업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덕분에 고준위 원자력 폐기물을 활용하거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셰일가스 개발비를 절감하는 기술 등 참신한 신사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최근엔 사람과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을 갖춘 로봇 ‘에뮤’도 발표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히타치는 최근 한국 유학생을 비롯한 외국인 인재를 공격적으로 채용하고 초대형 M&A를 잇따라 성사시키는 등 일본 기업으로는 흔치 않은 ‘열린 경영’을 추진하고 있다”며 “여기에 원래 갖고 있던 기술적 강점을 더해 인프라 비즈니스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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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특별취재팀=서정환 도쿄특파원(팀장), 노경목(지식사회부), 남윤선(산업부) 기자,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류상윤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공동기획 LG경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