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리포트] 버냉키와 서머스, 또 붙었다…불황 해법 '블로그 설전'

버냉키 "과잉저축이 원인…돈풀기 정책으로 저성장 극복 가능"
서머스 "이미 장기침체 진입, 양적 완화 효과 없어…적극적 재정정책 필요"
“서머스 주장은 한물간 학설”
버냉키, 블로그 통해 구조적 장기침체 가설 반박
“저성장은 일시적인 현상이다”

“버냉키는 재정정책 과소평가”
서머스, 반론 글로 대응
“나도 내 주장 틀렸으면 좋겠지만 양적완화·저금리론 해결 안돼”
벤 버냉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가 7년간의 경기 침체를 겪고 있다. 미국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아시아 유럽 등은 아직 탈출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침체의 원인은 무엇이고, 얼마나 더 지속될 것이며, 또 적절한 대책은 무엇일까. 모두가 궁금해하고, 각국 정부당국자와 경제학자들을 가장 괴롭히는 질문이다.

이 화두를 놓고 세계 경제학계의 두 ‘거두(巨頭)’가 맞붙었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벤 버냉키와 재무부 장관을 지낸 로렌스 서머스가 그 주인공이다. 경력이나 명성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학 대가들이 각자의 블로그를 통해 경기 침체 원인과 대책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 등 해외 유력 언론은 이 논쟁을 주목하고 있다. 침체 원인에 따라 미국 금리 인상 시기 등 앞으로의 정책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다른 진단, 다른 처방

버냉키 전 의장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블로그(www.brookings.edu/experts/bernankeb)를 통해 Fed의 통화정책을 비판했던 서머스 전 장관의 의견에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핵심은 두 가지다. 현 침체 국면의 원인을 어떻게 볼 것인가와 적절한 대책은 무엇인가다.

버냉키와 서머스는 일단 현재의 저금리 상황이 우려스럽다는 데 공감했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현재 연 1.9%, 30년물은 2.5%다. 5년물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이미 마이너스 금리(-0.1%)다. 다른 나라 사정도 마찬가지다. 10년물 국채의 경우 독일은 0.2%, 일본 0.3%, 영국 1.6%에 불과하다. 스위스 10년물 국채는 발행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져 있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돈을 얹어주면서 빌려주는 상황이다. 그만큼 돈 쓸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저금리는 저성장의 단면이다.
로렌스 서머스
서머스는 이런 국면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른바 ‘구조적 장기침체 가설(secular stagnation hypothesis)’이다. 이 가설은 1938년 앨빈 핸슨 하버드대 교수가 처음 제기했다. 1929년 대공황 이후 인구 성장 둔화에 따른 총수요 부족으로 기업 투자와 소비가 위축되면서 전 세계가 장기 침체를 겪을 것으로 진단했다. 서머스는 이를 인용, 현 국면도 총수요 부족으로 경기 침체가 구조화돼가는 단계로 봤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저금리·양적 완화로 대표되는 통화정책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게 서머스 주장의 핵심이다. 서머스는 이런 주장을 2013년 11월 버냉키가 임기 만료를 앞둔 시점에 공개석상에서 제기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버냉키는 서머스의 주장을 ‘한물간’ 학설로 일축했다. 2차 세계대전 후 30여년 지속된 유례없는 경제성장으로 이미 핸슨의 주장이 틀렸다는 게 증명됐는데도 서머스가 아직 그런 주장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의 저금리·저성장 국면에 대해서도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나를 가르쳤던 서머스의 삼촌 폴 새뮤얼슨(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 얘기했던 것처럼 마이너스 금리에서는 기차나 버스가 가파른 산을 오르는 데 쓰는 적은 양의 기름을 아끼기 위해 록키산맥을 깎는 사업조차 수익을 남길 것”이라며 “그런 투자 수요 때문에 저금리 상황은 지속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통화정책 vs 재정정책

버냉키는 또 구조적 장기침체설이 해외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상황이 어렵더라도 수익성 있는 해외사업에 투자가 이뤄지면 통화 약세가 되고, 이는 다시 수출을 늘려 고용과 생산이 증가하는 완전 고용 쪽으로 유도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결국 글로벌 개방경제에서는 개별 국가단위에서의 구조적 경기침체론을 주장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현 침체 국면을 ‘과잉저축 가설(savings glut hypothesis)’로 설명했다. 1990년대 아시아 외환위기 후 아시아를 포함해 각국이 투자 대신 저축(외환보유액)을 과도하게 늘려 돈이 돌지 않는 것이 이번 침체의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현재의 침체 국면은 장기적이라기보다 일시적·순환적 측면이 있기 때문에 적절한 통화정책과 더불어 각국의 해외투자 활성화 정책 등이 시행되면 얼마든지 극복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서머스는 이에 대해 “나도 내 주장이 틀렸으면 좋겠지만 이미 선진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빠져들었으며 양적 완화와 저금리라는 카드로는 상황을 개선시킬 수 없다”며 “버냉키는 영구적으로 확장적인 재정정책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표하지만 이는 타당한 재정정책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벤 버냉키

△1953년 미 조지아주 오거스타 출생 △1975년 하버드대 경제학 졸업(최우등) △1979년 매사추세츠공대(MIT) 박사 △1985년 프린스턴대 경제학 및 공공정책학 교수 △1996년 프린스턴대 경제학과장 △2002년 미 중앙은행(Fed) 이사 △2005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 △2006년 미 Fed 의장 △2014년~현재 미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

■ 로렌스 서머스 △1954년 미 코네티컷 뉴헤이븐 출생 △1975년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졸업 △1982년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1979~1982년 MIT교수 △1983년 하버드대 교수(최연소 정교수 임명) △1993년 미 재무부 차관 △1995년 미 재무부 부장관 △1999년 미 재무부 장관 △2001~2006년 하버드대 총장 △2009년 백악관 국가경제회의(NEC) 위원장

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