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도화동(桃花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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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옛날 한 마을에 마음씨 고운 노인과 외동딸이 살았다. 딸의 아름다움이 천궁에 알려져 하늘나라로 시집가게 되자 노인은 기쁘면서도 섭섭했다. 이에 선관이 천도복숭아 한 개를 선물로 주고 갔다. 먹으면 천년을 산다는 복숭아였지만 노인은 딸 생각에 먹지 못했다. 결국 과일은 썩었다. 그러나 씨가 남았고, 덕분에 복숭아꽃이 만발했다.
사람들은 이 복숭아꽃 마을을 복사골이라고 불렀다. 서울 마포 도화동(桃花洞)의 유래다. 지금은 아파트촌으로 바뀌었지만, 밤섬에서 보면 산비탈의 분홍색 꽃밭과 쪽빛 한강물이 어우러져 그림 같았다고 한다. 다른 지역에도 복사골 전설은 많다. 복숭아꽃은 살구와 함께 집 주변에서 흔히 보는 것이어서 한때 국화(國花)로 정하자는 논의까지 있었다.복숭아 원산지는 중국 황하 상류다. 원래 봄볕에 타는 듯 붉은 꽃을 가득히 피우므로 어느 꽃보다도 양기가 충만하다고 해서 무병장수의 상징으로 쳤다. ‘귀신에 복숭아나무 방망이’라는 속담처럼 나쁜 것을 쫓는 용도로도 썼다. 복숭아꽃의 상징 중에서 가장 강한 것은 미(美)와 색(色)이다. 복숭아를 먹으면 예뻐진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전한다. 달밤에 복숭아 벌레까지 먹으면 더 예뻐진다는 속설에 ‘복숭아는 밤에 먹고 배는 낮에 먹으랬다’는 속담까지 생겼다.
복숭아 중에서도 살과 물이 많고 단 수밀도(水蜜桃)의 맛은 일품이다. 연분홍 색감에 둥두렷한 곡선, 가는 봉합선의 골이 있는 외양도 탐스럽다. 그래서 여성의 이미지와 연결시키곤 한다. 서구에서는 서양배처럼 생긴 엉덩이를 으뜸으로 치고, 동양에서는 복숭아처럼 생긴 엉덩이를 제일로 꼽는다니 더욱 그럴듯하다. 복숭아 빛깔인 도색(桃色)의 뜻이 도색 사진, 도색 영화 등 섹스 영역으로 쓰이는 것도 이런 연유일까.
도화살(桃花煞)은 호색과 음란을 뜻한다. 이 때문인지 선조들은 복숭아나무를 집안에 심지 않았다. 기생이나 애첩을 도엽(桃葉), 도근(桃根), 도화(桃花)라고 부르고, 도(桃)자가 들어간 이름은 유녀(遊女)에게나 붙였다. 그러고 보니 화류계 여인들의 부채도 도화선(桃花扇)이 아닌가.하지만 복숭아밭은 낙원 사상의 무릉도원(武陵桃源)이나 성스러운 도원결의(挑園結義)의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만큼 아름답고 높고 기품이 있다. 마포 도화동 사람들이 복사골 공원 복원에 나서 곧 완공할 모양이다. 봄마다 복숭아꽃 천지가 되는 부천에서도 내달 2~5일 복사골예술제가 열린다고 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