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교수 전성시대'…당신은 누구입니까?

[교수명칭 인플레시대(상)] 이름붙이기 나름…별별 교수 다 있네
[ 김봉구 기자 ] # 4·29 재·보궐선거에서 서울 관악을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 정치적 재기를 노리며 활동 보폭을 넓히고 있는 그는 최근 새 명함을 받았다. 직책은 대학 교수. 이달 1일자로 고려대 석좌교수를 맡았다.

# 돈 자이에 전 독일 막스플랑크 수학연구소장은 포스텍 석학교수 자격으로 4월 한 달간 국내에 머물며 강의 중이다. 그는 16세에 MIT(매사추세츠공대)를 졸업한 ‘수학천재’로 유명하다.# 유력 노벨상 후보인 한국계 캐나다인 찰스 리 잭슨랩 유전체연구소장도 국내 대학 강단에 선다. 올해 1학기부터 이화여대 초빙석좌교수로 임용돼 국제 공동연구, 공개특강, 학생 지도 등에 나선다.
이들 ‘교수’는 통상 대학 교수와 달리 앞에 이런저런 별도의 명칭이 붙는다. 겸임·초빙·객원교수 등 외부 인사 영입에 알맞은 교수직이 대표적이다. 본업과 함께 대학에 적을 걸어놓기 쉬운 경우다. 명칭은 주로 계약 형태, 직무 영역, 활용 재원 등에 따라 갈린다. 국책사업 수행을 위한 계약제 전담교수가 신설되기도 한다.

15일 대학가에 따르면 이같은 여러 이름의 교수직이 적게는 20여개, 세세하게 분류하면 50개 내외에 달할 만큼 늘었다. ‘교수 인플레이션 시대’라 할 만하다. 복잡해 보이기까지 하는 다양한 종류의 교수들은 어떻게 다른 걸까.◆ 대학 교수라고 다 같은 교수가 아니다

최근 돈 자이에, 찰스 리 박사 등 해외석학을 교수로 임용한 포스텍(위)과 이화여대. / 한경 DB
교수의 기본 의무는 연구·교육·봉사다.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봉사 영역을 논외로 하면 논문 쓰고 강의하는 게 교수의 본분이다. 그러나 교수 명함을 지닌 이들이 모두 해당 의무를 이행하진 않는다. 캠퍼스에 여러 형태의 ‘OO교수’가 늘어나면서 생긴 변화다.대학 교수는 크게 전임교원과 비전임교원으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교수는 전임교원을 가리킨다. 채용과 승진 시에 논문 등 전문적 연구실적이 요구된다. 전임강사(조교수로 호칭 통합)부터 시작해 조교수·부교수·정교수의 단계를 밟는다. 내부적으로 직급이 나뉠 뿐, 명칭은 교수로 통일된다.

반면 비전임교원엔 여러 형태의 교수와 강사직이 포함된다. 복잡한 교수 명칭 대부분이 비전임교원을 지칭한다. 연구·강의·산학협력교수 등 직무 위주로도 분류되지만 크게 한 테두리로 묶인다. 계약 형태와 기간, 임금은 다양하다. 시급 몇만원의 시간강사부터 정규강의 없이도 수천만원을 받는 교수직까지 천차만별이다.

◆ 유동성 큰 '비전임교원' 다양하게 분화차이점으로는 명확한 가이드라인 유무를 꼽을 수 있다. 전임교원은 대학에서 전일제(full time)로 근무한다. 일정 시간 이상 강의를 해야 하는 ‘책임시수(주당 의무강의 시간)’가 있다. 각 대학이 교원업적평가에서 요구하는 논문 등 연구실적도 채워야 한다. 이에 비해 비전임교원은 유동성이 크다. 대학마다 자체 인사규정이나 법인 정관의 단서규정에 따르므로 확실한 기준이 없는 실정이다.

관련 법령인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7조(겸임교원 등)는 “학교의 장은 겸임교원·명예교수·시간강사·초빙교원 등을 각각 임용 또는 위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령 상에 제시된 4가지 유형이 여러 명칭의 교수로 파생됐다고 보면 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름은 다양하지만 비전임교원은 법령 상으로는 해당 조항의 유형 중 하나에 속한다”며 “엄밀히 따지면 석좌교수, 석학교수 같은 무게감 있는 교수 명칭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름은 따로 제한을 두지 않고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부여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 전체 파악도 힘든 각양각색 교수 명칭

실제로 대학들은 겸임 초빙 객원 대우 방문 교환 명예 석좌 특임 특훈 학연(學硏) 기금 외래 임상 연구 강의전담 산학협력중점교수 등 줄잡아 20여개 명칭을 사용 중으로 파악된다. 해외 명칭인 펠로우(fellow)를 그대로 쓰기도 한다. 개별 대학들이 운영하는 세부 명칭까지 따지면 50개 내외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관훈신영기금교수, 언더우드특훈교수 등의 제도를 운영 중인 고려대(왼쪽)와 연세대. / 한경 DB
비전임교원만 교수 직함에 명칭이 붙는 건 아니다. 뛰어난 연구력을 인정받은 전임교원에게 정년 보장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특훈교수 제도도 운영된다. 올해 호암상 수상자로 선정된 천진우 연세대 언더우드특훈교수가 이런 케이스.

카테고리가 딱 떨어지게 나눠지진 않은 탓에 강의초빙교수, 초빙특훈교수, 명예특임교수 등 ‘겹치기 명칭’도 보인다. 또한 인문한국(HK) 지원사업에 따른 HK연구교수나 산학협력선도대학(LINC) 육성사업으로 활성화된 산학협력중점교수 등 정부 재정지원사업과 연계된 형태, 고려대 관훈신영기금교수 같은 목적성 기금 초빙이 유연하게 활용되고 있다.

◆ 사회적 수요 반영… 자정 기능은 필요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기관지 ‘대학교육’(114호)에서 다양한 교수 유형을 정리한 김형근 전 대교협 고등교육연구소장은 비전임교원의 명칭이 복잡해진 데 대해 △법적 명칭 자체의 구분이 명료하지 않아 자유롭게 혼용됐고 △명칭 구분의 기준이 다양한 데다 △교과 또는 개인별로 대학에서 근무하는 시간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현상을 나쁘게만 볼 이유는 없다는 게 대학들의 시각이다. 다변화된 시대적·사회적 수요에 대응해 풍부한 현장 경험을 갖췄거나 특수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를 영입해 활용하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대학 입맛에 따라 이런저런 명목을 붙이는 ‘명함 장사’로 전락하지 않도록 자정기능은 필요하다. 서울의 한 대학 보직교수는 “비전임교원 세부 임용기준과 자격요건은 자체 내규에 따른다”면서 “그렇다고 해서 원칙 없이 교수직을 남발한다면 대학의 격을 떨어뜨리는 ‘제 살 깎아먹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17일 [교수명칭 인플레시대(하)] 기사로 이어집니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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