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박종구 초당대학교 총장 "금호그룹 경영하는 형들과 달리 공직서 일하는 데 더 매력느껴"

"지방대 한계넘는 길은 창의와 열정…학생들 취업도 손수 챙길 겁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책 읽기 좋아했던 재벌가 5남
사업 대신 학계·공직에 헌신
공기업 개혁이 가장 큰 보람
대학생 시절 언론인 꿈꾸기도

초당대서 ‘또 다른 성공 신화’ 쓴다
폴리텍대 이사장 땐 학교 위상 높여
교직원·학생에게 “할 수 있다” 강조
“올해 취업률 72%까지 끌어올릴 것”화려한 색깔과 향으로 먼저 눈을 만족시키고 코를 매혹시키는 요리가 있는 반면 겉보기에는 화려하지 않아도 씹을수록 맛이 나는 음식이 있다. 소의 위인 ‘양’을 구워 먹는 양구이가 그렇다. 최근 3년간의 한국폴리텍대 이사장 생활을 뒤로하고 대학으로 간 박종구 초당대 총장을 3월 말 비 내리는 저녁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 있는 진주집에서 만났다.

40여년의 전통을 갖고 있는 이 집은 양구이와 진주식 비빔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박 총장은 “분위기가 소박해 술 한잔 하기 좋아서 15년 넘게 단골로 지낸다”며 “이 집은 유행 따라 생겨났다가 없어지는 음식점들과 달리 묵직하고 그윽한 맛이 있다”고 말했다. 음식을 나르던 진주집 사장도 “양은 지방이 거의 없는 단백질 덩어리”라며 “소 한 마리에서 얼마 나오지 않는 아주 귀한 재료라 예로부터 보양식으로 꼽혔다”고 거들었다.

○읽고 쓰기 좋아했던 조용한 ‘언론인’ 지망생박 총장은 고(故)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의 5남이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등 기업경영에 뛰어든 형들과 달리 박 총장은 대학 졸업 이후 학계와 공직에서 평생을 보냈다. 아주대 교수에서 기획예산처(현 기획재정부) 공공관리단장,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을 거쳐 한국폴리텍대 이사장을 지냈다. ‘재벌집 아들’이 왜 기업 경영에 관심이 없었을까. 양구이가 익어가는 불판을 보던 그는 “선친이 사업 전에 공직에서 일하셨다”며 “형님들은 아버지로부터 사업 DNA를, 저는 공직 DNA를 물려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총장은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넣더니 “개인적으로 돈보다 명예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었고 공직이나 교직처럼 공적인 영역에서 일하는 게 적성에 더 잘 맞는 것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박 총장이 소주잔을 채워 기자에게 권했다. 안주로 잘 익은 양구이 한 점에 매콤한 소스를 찍어 입에 넣자 쫄깃하면서도 아삭한 식감과 함께 담백한 감칠맛이 입안에 퍼진다.

어린시절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는 박 총장은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유학시절 이야기를 물었다. 그는 “유학생활을 한 1981년부터 1987년까지는 부잣집이건 아니건 유학생의 삶이란 게 다들 변변치 못했다”고 했다. 그는 “학교 앞 중국집에서 당시 환율로 4000원 정도 되던 음식도 1주일에 한 번 먹기가 어려웠고 돈이 아쉬워 콜라도 곁들여 마시지 못했다”며 “집에서 돈을 부쳐주고 장학금도 받아서 다른 학생보다는 여유가 있었을지 몰라도 대체적으로 궁색했다”고 회고했다.대학시절에는 언론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1970년대 후반 유신체제 아래에서 대학생들의 시위가 격렬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데모에 참여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언론인으로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교수이자 대학 경영자로 살고 있는 지금도 하루에 2~3시간 신문을 읽을 정도로 신문에 관심이 많다. 글도 열심히 쓴다. 웬만한 일간지에는 모두 기고했을 정도로 문장력이 좋고 글 쓰는 속도도 빠르다. 비결을 물었다. 박 총장은 “1주일에 3편씩 기고한 적도 있는데 매일 신문을 읽고 10가지 정도로 주제를 나눠 스크랩을 해두는 습관이 빠르게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글을 잘 쓰려면 다독(多讀)이 최우선이고 그중에서도 일간지를 읽는 것이 가장 훌륭한 독서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공기업 개혁이 공직생활 가장 큰 성과

양구이가 살짝 물릴 때쯤 선지해장국이 나왔다. 무와 콩나물로 우려낸 시원한 국물에 매콤한 양념이 된 선지가 잘 어우러진 것이 다시 식욕을 돋웠다. 해장국을 안주삼아 소주가 한 순배 더 오갔다. 공직시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뭐냐고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공기업 개혁을 꼽았다. 그는 1998년부터 2002년까지 기획예산처에서 정부개혁실 공공관리단장으로 일했다. 그는 “당시 정부가 추진했던 개혁 과제 중 하나가 공기업 개혁이었다”며 “대학에 있을 때부터 공기업 평가를 오래 했던 까닭에 공기업 전문가로 발탁돼 공직에 입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포스코, KT,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KT&G 등 굵직한 기업들이 박 총장이 단장이던 시절에 민영화됐다. 박 총장은 “외환위기로 개혁이 꼭 필요하던 시기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에 저항도 적었다”며 “지금 생각해도 공기업 개혁은 잘됐다고 본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당시에는 주식 매각 방식의 민영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며 “솔직히 아쉬움은 남지만 공직생활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공기업 개혁”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폴리텍 성공 신화 초당대에서 이어갈 것”

그는 10년 넘는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2009년 다시 대학으로 돌아갔다. 친정격인 아주대 총장 직무 대행을 맡다가 2011년 한국폴리텍대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폴리텍대 이사장이었던 3년간의 성과를 물었다. 그는 폴리텍대의 인지도가 높아진 것을 가장 먼저 꼽았다. 박 총장은 “처음에는 폴리텍대를 잘 몰랐고 사실 가고 싶지 않았다”며 “취임 당시 54%였던 인지도를 90% 넘게 끌어올린 것이 성과”라고 강조했다.

폴리텍대 이사장으로 재임하면서 가장 신경쓴 것은 취업률이었다. 그는 “취업률을 80%대 후반으로 정착시키자 취업의 질이 좋아지고 대학 인지도도 높아진 데다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학생들의 수준도 좋아졌다”며 “논산 바이오캠퍼스에 들어오는 학생들의 수능 평균은 2등급 이상이고, 울산캠퍼스 신입생 경쟁률은 20 대 1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박 총장은 폴리텍대의 성공을 초당대에서 이어간다는 각오다. 그가 생각하는 초당대의 문제는 인지도 부족과 지방대라는 한계다. 처음 폴리텍대에서 겪었던 문제와 비슷하다. 그는 취임 이후 초당대 교원과 교직원, 학생들에게 ‘창의와 열정’을 주문했다. 입시설명회도 총장이 직접 진행했다. 박 총장은 “창의와 열정이 있으면 ‘할 수 있다’ 정신이 나오게 된다”며 “보통 총장은 처음 축사만 하고 자리를 뜨지만 10여곳의 입시설명회에서 학교 현황, 입시정책 등을 직접 설명했다”고 밝혔다. 그는 “작은 변화가 꾸준히 누적되면 임기가 끝날 때쯤 되면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자신했다.

양구이로 어느 정도 배가 찬 상태에서 진주식 비빔밥이 나왔다. 볶은 소고기와 묵채, 김, 콩나물 등 소박한 고명을 고추장과 함께 밥 위에 얹은 것이 특징이다. 쓱쓱 비벼 한 입 맛보니 담백하고 깔끔했다. 선지해장국과도 잘 어울렸다. 비빔밥을 몇 술 뜬 박 총장이 초당대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초당대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은 연구중심대학보다는 교육중심대학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라며 “올해 취업률 72%라는 목표를 세워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주에 한 번 직접 취업 점검회의를 열어 취업률을 점검하고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며 “학생들에게 알아서 취업하라고 하는 건 선생으로서 무책임한 일”이라고 했다.

○독서가 취미

박 총장의 취미는 독서다. “토요일에 서점에 들러 책을 고르는 것이 나의 유일한 취미생활”이라고 말할 정도다. 초당대 총장으로 취임한 이후에는 ‘총장이 추천하는 책 100권’ 목록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배포했다.

식사가 끝날 즈음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즐겨 인용한다는 송나라 때 개혁정치가인 왕안석의 고사를 들었다. 그는 “송나라 황제가 신하들에게 왕안석에 대해 묻자 먼 길을 갈 수 있는 소와 같은 사람이라고 답이 나왔다”며 “성실히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실과 노력을 다했을 때 그 노력에 상응하는 보상이 오게 만드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박종구 총장이 찾은 집 진주집
고위 공무원·CEO가 꼽는 맛집…쫄깃한 양구이 감칠맛

서울 필운동에 있는 진주집은 소의 위인 양을 구워 내놓는 양구이집이다. 1975년 개업해 올해까지 40년 된 맛집이다. 개업 당시부터 근무하던 주방장이 지금까지 일하고 있어 그 맛 그대로다. 정부서울청사와 서울지방경찰청이 가까워 공무원들과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자주 찾는 집이다.

메뉴는 양구이와 진주식 비빔밥 두 가지다. 양구이에 쓰이는 양은 뉴질랜드산이다. 양구이를 먹고 난 뒤 식사로 주로 찾는 진주식 비빔밥은 청포묵과 나물 두어 가지 및 김가루 등이 들어 있어 담백하다. 소고기 육회를 얹어내는 진주 현지와는 다르게 볶은 소고기를 얹는 것이 특징이다. 비빔밥만 주문할 수는 없고 양구이를 먹어야 비빔밥을 먹을 수 있다.

양구이를 먹을 때 입가심용으로 제공하는 미역오이냉국이 시원하면서도 깊은 맛을 낸다. 비빔밥과 함께 나오는 선지해장국도 콩나물과 무로 국물을 내 시원하다. 진주집은 손님들에게 음식을 과하게 권하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오히려 손님들이 적당히 양구이를 먹었다고 생각되면 주인이 과식하지 말라고 권한다. 음식점은 손님들의 건강을 책임져야 한다는 진주집 사장의 경영방침이다. (02)735-3833

■ 초당대, 전남 무안군 위치…2012년에 일반대로 전환

초당대는 1994년 7개 학과 700명의 학생으로 전남 무안군에 초당산업대로 개교했다. 설립자는 김기운 백제약품 회장이다. 1998년 5월 초당대로 개칭했고 2012년 일반대학이 됐다.

대학은 보건, 항공, 인문사회, 공무원양성, 이공, 예체능, 교양교직 등 7개 계열로 구성돼 있다. 대학원은 일반대학원과 산업대학원으로 나뉜다. 안경박물관, 소방박물관 등의 부설기관이 있고 부설연구기관으로 슬로문화연구센터가 있다.

■ 박종구 총장△1958년 광주광역시 출생 △1975년 서울 충암고 졸업 △1979년 성균관대 사학과 졸업 △1983년 미국 시러큐스대 경제학석사 △1987년 미국 시러큐스대 경제학 박사 △1987년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 △1998년 기획예산처 공공관리단장 △2003년 국무조정실 경제조정관 △2007년 과학기술부 과학기술혁신 본부장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 제2차관 △2010년 아주대 총장 직무대행 △2011년 한국폴리텍대 이사장 △2015년 초당대 총장

임기훈/나수지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