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특검, 진실 규명 도움되면 마다할 이유 없다"

남미 순방 직전 김무성 대표와 긴급 회동

"총리 거취 순방 후 결정"…사퇴로 가닥 잡나
집권 3년차 국정동력 약화 위기감 고조
총리 대신 당대표 불러 국정협력 요청 '이례적'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6일 청와대에서 만나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관련해 얘기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남미 순방에 앞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의 긴급 회동을 요청한 것은 그만큼 국내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당초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아 이날 전남 진도 팽목항에 들렀다가 광주공항에서 곧바로 콜롬비아로 떠날 예정이었지만 출국 시간을 늦춰가며 청와대로 올라와 김 대표를 만났다.

순방 기간에 대통령을 대신해 정국 운영을 책임질 이완구 국무총리가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휩싸여 있고, 새정치민주연합이 파상 공세를 펴고 있는 가운데 집권 여당 대표에게 안정적인 정국 운영에 대한 협조를 요청한 것이다. 김 대표는 회동 뒤 브리핑에서 “낮 12시쯤 이병기 비서실장으로부터 대통령께서 장기간 출국에 앞서 여러 현안에 대해 당 대표의 의견을 듣고 싶어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박 대통령, 이 총리에 등 돌리나

40분간 진행된 회동에서 김 대표는 이 총리 거취 여부에 대한 당내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했다. 박 대통령은 정치권 일각에서 주장하는 특별검사제 도입에 대해 “의혹을 해소하고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라면 어떤 조치라도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긍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장기화하면 집권 3년차 국정 동력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는 여권 내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박 대통령이 특검 도입을 통해서라도 이번 사태를 조기에 마무리짓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이 총리의 즉각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대해선 즉답을 하지 않은 채 “순방을 다녀와서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여권은 박 대통령이 중남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이달 27일 이후 이 총리 사퇴를 포함한 특단의 조치를 취할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세월호 1주기 현안 점검 회의를 주재하고 “부정부패에 책임 있는 사람은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검찰의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했다.박 대통령은 또 다음달 2일이 협의 시한인 공무원연금 개혁과 국회에 계류돼 있는 경제활성화 법안의 조속한 처리도 요청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공무원연금 개혁과 경제활성화법 처리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며 “4월 임시국회에서 야당과의 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은 어렵게 협상의 물꼬를 튼 공무원연금 개혁이 이번 사태에 파묻혀 흐지부지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총리 아닌 당 대표 부른 이유는?

박 대통령이 이 총리 대신 김 대표를 청와대로 부른 것에 대해 당·청 관계 변화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해석이 적지 않다. 대통령이 외국으로 나갈 때 총리를 불러 각종 지시와 당부를 하는 것이 관행이다. 때문에 박 대통령이 이 총리 대신 비주류인 김 대표와 만나 국정현안을 논의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친박 핵심들이 ‘성완종 리스트’에 대거 거명되면서 박 대통령이 결국 사태수습과 향후 정국 운영을 위해 비주류로 간주되는 현 지도부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이 이날 회동에 대해 “박 대통령이 당 내부의 의견을 듣고 가능한 것들은 수용할 가능성을 열어놓기 위한 자리”라고 평가한 점은 이런 해석에 힘을 싣고 있다.

○새정치연합 “시간끌기 회동”

새정치연합은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시간 끌기 회동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김영록 수석대변인은 “국민은 이 총리의 즉각적인 사퇴를 기대하고 있는데 박 대통령은 이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며 “도피성 해외 출장을 앞두고 면피용 회동으로 모양새를 갖추려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정호/박종필 기자 dolph@hankyung.com